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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제9차 연주여행기 조회수 : 6042
  작성자 : 김종화 작성일 : 2008-02-11
○ 우리는 아프리카로 간다
  
  미지의 나라, 그 신비의 베일에 쌓인 아프리카를 보기 위해 왕도였던 김해를 떠난다. 영낙없는 새의 모습을 한 항공기의 견고한 날갯죽지 편향각이 굉장하다. 관제사가 손을 흔들고 공군기 한 대가 긴 배기연을 달고 사뿐히 내려 앉는다. 양력(揚力)을 받기 위해 앞으로 숙인 은익 위로 아침햇살이 눈부시다.
  마침내 우리 일행 58명을 태운 KE0615機가 창공을 차고 오른다. 사람의 발자취가 산능선에 길을 냈다. 구름 아래 공사가 한창인 거가대교가 보이고 운해 속으로 빠져들더니 눈밭 같은 성층권 위를 날고 있다. 육지엔 오색 그림, 하늘엔 무채색과 주황빛의 그림을 펼쳐놓으시고 조물주께선 심심치 않으시겠다.
  첫 기내식은 소고기덮밥, 베이컨샐러드에 레드와인 한 잔, 아기 주먹만한 찹쌀떡 두 개...꼭 소꼽살이 같다. 그래도 아침을 거른 단원들에겐 진수성찬이나 진배없다.

○ 홍콩 - 향기 가득한 도시

  깃털 하나 없는 날개가 잘도 난다. 翼鳥를 닮은 기체가 구름을 뚫고 제 그림자를 바다에 비추며 내려앉은 기착지는 홍콩. 방긋 웃으며 전송하는 애띤 얼굴의 여승무원.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 일, 재미없어요!> 한다. 예전엔 선망의 대상이었던 스튜어디스도 이젠 힘든 직종이 됐나 보다. 우리가 타고 온 비행기는 다시 부산으로 돌아간단다.
  초콜렛을 <쭈글레>, 화장실을 <워따똥따>라고 한다는 곳. 남성 존칭이 따꺼(大兄)여서 <이씨>를 <이닦어>라 하여 한바탕 웃었다. 가이드 용 등받이가 있는 버스는 우리 나라 가을 같은 날씨 속을 동양 최장의 현수교라는 <靑馬대교>를 지나 홍콩섬으로 들어간다. 세관은 <海關>, 빨간 색의 택시는 <的士>, 버스는 <巴史>다. <부히냐 Bauhinia>라는 市花와 노랑 아카시 꽃을 처음 보았다. 붉은병솔나무와 아열대식물이 겨울인데도 나무마다 꽃을 피웠고 야자수잎이 늘어져 남국정취를 자아낸다. 습도가 높아(보통 90%를 상회한댄다) 무좀과 관절염 약이 발달하고, 보습효과로 피부미인이 많으며, 고혈압과 당뇨병이 드문 장수국이라 한다. 그렇지만 호텔이나 집에 난방이 없고, 버스 안은 습기 때문에 에어컨을 늘 가동하여 추웠다. 물가는 싸지만 담배가 4천원이고, 남자 자살율이 높단다. 두 가지 이상 일을 가져야 하고, 여자에게 용돈을 줘야 하고, 남자가 밥하고 빨래하는 곳이라고 하여 우리는 혀를 내둘렀다.


  ▲ 홍콩 섬 앞바다를 지나가는 유람 범선 靈鴨(Dukling)

  미로가 끝이 없는 홍콩섬 풍물시장 <스텐리마켓>과 옛 총독 관저를 둘러보고, 기념품을 샀다. 나는 전부터 갖고 싶던 손 모양의 목각 명함꽂이와 홍콩항을 새긴 작은 도자기 종을 샀다. 꽃집에서 양란과 노랑 붓꽃, 불꽃나리(프레임릴리), 버들개지, 분홍겹동백과 백매화, 천엽수선, 튤립, 순백의 글라디올러스, 대륜종 아마릴리스, 노랑색 백합 구경을 했다.
  T1 정차근 장로님 처제인 홍콩제일교회 강기화(姜其和) 집사의 초청으로 해물전문집인 <明星海鮮舫>에서 <사틴> 요리를 먹었다. 새우와 다금바리, 브로콜리와 불고기, 안량미 밥을 오리껍데기 요리에 싸 먹었다. TV에선 한류(韓流)의 영향인지 <대장금>이 방영되고 있었다.
  밤이 이슥해지길 기다려 요하네스버그(約翰尼斯堡)행 비행기를 탔다. 장장 열 세 시간의 대장정이다. 김해공항에선 끄떡없었던 수화물이 중량초과로 천만원의 차아지를 물어야 한다고 해서 실랑이를 벌인 끝에 탑승한지라 자신도 모르게 천하장사도 못 든다는 눈거풀이 스르르 내려왔다.


▲ 홍콩제일한인교회 찬양을 마치고, 윤석화 집사와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 남아공 교민과 비행기 안에서 나눈 이야기

  사전지식이 없던 내게 교민과의 옆자리 동석은 행운이었다. 정도명이란 인상좋은 젊은이였는데, 가족을 김해에 두고 매부의 사진관과 무역업을 돕고 있다고 하였다. 흑인들이 사진 찍는 걸 좋아해서 남아공에서는 사진관이 성업중이라 한다. 화란계와 영국계 백인 비율이 6:4로 우리 나라의 11배 크기. 포도 농사가 잘 되는 지중해성 기후로, 교민들은 가발공장과 속도감지카메라, 콘돔 납품으로 성공한 이가 많다고 한다. 특산물로는 금, 다이야, 백금, 카페인 없는 천연장수茶 <로이보스 티>와 칼라하리사막에서 나는 <악마의발톱> 관절약, 변비와 아토피에 좋은 알로에 제품, 포도주와 무화과 등 말린 과일이라 말해주었다.

○ 여기는 아프리카

  몇 시간을 잤는지 모른다. 날짜변경선을 지나고 시계를 7시간(한국보다는 8시간 뒤) 뒤로 돌려놓았으니...조벅(요하네스버그의 약칭)에 도착하니 아침이었다. 고려신학대학원 출신의 정은일 목사(조벅한인교회)와 안내를 맡은 김영애 선교사(고신대 은사 김형규 교수 부인)께서 반갑게 맞아주셨다. 2010 월드컵을 앞두고 공항 확장이 한창이다. 밖으로 나오자 하얗게 핀 자스민 꽃밭이 백색 아가팬서스 꽃들과 함께 반겨준다.
  해발 1,750m 고산지대, 열대야가 없고 연평균 15,6도C의 쾌적한 도시란다. 승하차시 차체가 통채로 내려가는 화장실 달린 버스를 타고 정원이 아름다운 게스트하우스로 갔다. 분홍빛 수국과 마가렛, 늘어진 야자수와 처음 보는 홍단심계 대륜종 무궁화, 자귀나무를 닮은 분홍빛깔의 꽃, 고사리류와 열대식물이 아름다왔다. 한식과 양식을 곁들인 맛난 식사를 하고 아프리카 부족마을(민속촌)로 갔다. 말로만 듣던 아프리카 초원이 보였다.

○ 부족마을에서 아프리카를 체험하고

  코끼리 두개골과 상아로 장식한 입구로 들어가자 현란한 치장을 한 토인들이 달려나와 요란한 춤과 노래로 환영을 한다. 나보다 덩지가 큰 추장 차림의 흑인이 어깨동무를 하고 사진을 찍자 한다. 커다란 널판지로 만든 원시적인 실로폰과 통나무를 파서 만든 손잡이북을 둥둥 울리며...담장을 예쁘게 칠하는 엔제멜레 부족, Sotho, Xhosa, Ped, 용감무쌍한 줄루族 등 원주민 다섯 부족의 특징을 담은 가옥들과 생활 도구를 재현해 놓았는데, 알로에(사포나리아)와 일일초, 칠변화와 병아리를 거느린 암탉, 쇠비름, 나팔꽃과 호박꽃이 반가왔다. 우리네 옛집같이 싸리울이 있고 밥짓는 십자형 화덕도 있었다. 맷돌 대신 널찍한 돌판 위에 옥수수와 콩을 갈아 설탕을 섞어 먹어보라 하거나, 말린 굼벵이와 막걸리 비슷한 토속주를 마셔보라 한다. 코사족(만델라 전 대통령도 이 부족인데, 온유한 성품에 약간 동양적인 풍모가 있다) 집에 들어가 생활모습을 구경하였다. 여자들은 안전을 위해 문을 열어도 안보이는 곳에 모여 앉게 했단다. 페드족은 절구통이 있어 한결 정다워 보였다. 3개월 된 흑인아기가 인형처럼 귀여워 정대자 교수가 품에 안아 본다.


  ▲ 아프리카 토인마을 줄루족 추장과 함께. 그 곁은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며 여행에 도움을 많이 준 영도 동삼교회 변도우 장로

  우리는 광장에 모여 '어메이징 그레이스'와 'God is so good' 등을 합창했는데, 추장이 나와 지휘를 하며 즐거워하는 바람에 한바탕 웃음꽃이 피었다. 공연장으로 자리를 옮겨 그들의 전통춤과 음악, 용감하기로 이름난 무사들의 무예시범을 관람했다. 매기고 받고, 데스칸트도 있는 그들의 전통 음악에 절로 신이 났다. 나중엔 이문걸 장로와 방패를 들고 칼싸움을 하자고 하더니, 관광객과 함께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면서 춤을 추었다. 이들의 악수법이 특이했는데, 처음엔 보통 우리가 하는 식으로 하고, 곧바로 서로의 엄지손가락 뿌리를 잡은 다음 또 한 번 보통 악수를 하였다.
  나는 준보석 원석과 조롱박으로 만든 기하학적 무늬의 장식품을 기념품으로 샀는데, 대원들은 가죽으로 만든 모자를 많이 샀다. 갖고 싶던 목각들은 무서운 탈이나 동물 모양이어서 사지 않았다.

○ 호텔에서의 첫밤

  숙소인 INDABA(아프리카부족회의)호텔로 가면서 본 흑백 마을의 대비가 대원들을 경악시켰다. 6.25 전쟁통의 판잣집과 진배없는 흑인마을과 정원수가 숲을 이룬 백인마을의 양극화는 이 나라가 풀어야 할 큰 숙제였다. 백향목 등 큰 나무들과 피라칸스, 아프리카 아가팬서스 등으로 뒤덮힌 아름다운 특급호텔에 들어서자 시원한 주스를 대접한다. 객실엔 하트 모양의 초콜렛을 놓아 두었다. 이 작은 것 하나 하나가 먼길을 온 나그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하얀 아이리스(붓꽃)가 예쁘게 피고, 신기하게도 배롱나무가 꽃을 피우고 있고, 자카란다 꽃이 데치 지붕 위에 떨어지고, 커다란 새가 넓적한 부리로 호텔방 문을 노크하는 전원 속 호텔, 벨보이가 전동차로 짐을 날라주는 넓은 경내가 맘에 들었다.
  체크인을 마치고 한인교회로 가서 첫 연습을 하고 갑부로 소문난 황재길 장로께서 베푼 만찬을 들었다. 여성도들께서 정성껏 마련한 부페 한식엔 말로만 듣던 양고기도 나왔다. 망고 등 남국의 과일과 맛난 쌈장에 풋고추 맛은 정말 기가 막혔다. 오백 명이 넘게 모인다는(고신측 해외총회에서 가장 크다) 교회당 건물은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동행한 장로님들은 평화교회를 이렇게 지어 보라 하였다. 중정(中庭)엔 아기 고양이들이 재롱을 피우고, 풀벌레가 찌르르 울었다.
  만찬 초대에서 돌아와 박종민 장로님과 한 방을 썼는데, 장로님께서 한국 시각과 현지 시각으로 새벽기도를 하시는 바람에 두 번이나 기도를 드렸다. 이번 여행을 위해 기도하던 중 보험금과 외환통장이 나와 동참케 된 장로님은 기도하는 재미를 톡톡히 본다고 하셨다.

○ 낯선 곳에서의 첫 주일

  장로장립 후 처음으로 맞는 낯선 곳에서의 주일, 우리 성가단이 찬양을 하고, 동행한 정대자 권사(최진석 장로부인)가 특송을 하였다. 백인교회 철거 때 가져온 150년 된 장의자와 스테인드글래스가 멋졌다. 1991년 교회 창립 후 처음으로 듣는 남성 찬양과 맛난 초콜렛을 닮은 소프라노 음색이 교회당 안에 울려퍼지고...정은일 담임목사님은 <예언- 축복의 말 - 하기를 힘쓰자>는 요지의 설교로 단원들 마음에 큰 감명을 주었다. 역시 말씀의 힘이 대단함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성도들과의 식사 교제 후엔 네덜란드인 개척기념관과 6.25동란 참전기념비가 있는 대통령 관저 <프로테리아>를 둘러보았다. 개척자들의 고난에 찬 여정이 마차와 생활도구, 부조와 그림 등으로 나뉘어 전시되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커다란 옛 성경책이 눈길을 끌었다. 설명에 영을 올리던 화란계 할머니는 우리가 코리아에서 온 장로들임을 알곤 어찌나 기뻐하던지...유물과 함께 포즈도 취해 주었다.
  문지기도 경비대도 없는 평화로운 대통령궁엔 원주민들이 목각인형을 팔고 있었다. 장미와 여러 색의 데이릴리(원추리. 갈색 원추리는 처음 보았다), 아마릴리스, 다알리아, 무궁화와 잘 다듬어진 수목들로 아름다운 언덕엔 평화가 깃들고, 고즈넉하기 그지없는 모습에 단원들은 탄성을 올렸다. 집무실이 있는 관저 건물은 정말 웅장하고 기품이 넘쳤으며 마치 꿈 속의 낙원 같은 모습이었다.


  ▲ 요하네스버그에서 가까운 행정수도 <프레토리아>에 있는 대통령궁. 식물원처럼 아름답고 정갈하게 잘 다듬어져 있었다. 동료들이 <시인의 눈물은 더 짠가요>, <좋은 시 구상했나요> 하고 물어왔다. 남아공엔 입법수도 사법수도가 따로 있어 3권분립이 잘 되어있다.

  엉겅퀴를 닮은 붉은 야생화 가득한 길로 조벅 시내로 들어가 최초의 교회와 중세풍의 시청 건물을 보았다. 남미 원산의 자카란다(Zacaranda- 미모사 잎에 오동꽃을 닮은 교목) 보라색 꽃이 봄에 피면 관광객이 더 많이 찾는단다. 한인교회로 돌아와 한식과 현지식으로 저녁을 먹은 다음 <부산장로성가단의밤> 연주회를 가졌다. <주를 찬양하세><내 주 되신 주를 참 사랑하고><영광의 주님 경배하세><테너독창/정차근 - 갈보리 보혈을 나는 믿네><주여 내가 당신을 사랑합니다><참 좋으신 주님><인도하시는 주님><소프라노독창/정대자 박창숙 -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나님의 은혜><예수 이름 찬양하라><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내 주는 강한 성>을 찬송하였다. 앵콜송으로 <예수 사랑하심은>과 <고향의봄>을 성도들과 함께 불렀는데, 이역만리 교민들이 환하게 웃으며 함께 여울지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며 단원들의 가슴도 한껏 뜨거워졌다.
  담임목사는 인삿말을 통해 <男聲 노래가 정말 좋다. 어찌나 부러운지 단원들을 모두 붙잡아 여권을 뺏고만 싶다>고 격찬을 하였고, 황장로님은 <악마의발톱> 茶를 선물하셨으며, 고향 친지를 만난 성도들은 손을 잡고 놓을 줄을 놀랐다. 나는 가져간 처녀시집 <흰금낭화같은 그대>와 부산크리스천문협의 연간집을 개관을 앞둔 <북까페>에 증정하였다.


  ▲ 요하네스버그한인교회의 아름다운 중정

○ 아프리카 최남단 케이프타운 - 세계 5대 관광지 중 하나

  이튿날 아침. 열대 과일과 양식으로 풍성한 호텔 조식을 끝낸 후 <사우스아프리카항공>으로 지구의 땅끝 케이프타운으로 날아갔다. 국내항공인지라 낮게 나르는 기체에서 광활한 칼라하리 사막과 줄지어 선 산맥들, 끝없이 이어지는 농경지와 대초원을 바라보았다.
  케이프타운 공항에서는 김형규 선교사께서 반겨주셨다. 버스에서 내리자 무장한 정복 경찰이 총에서 손을 떼지 않은채 경호를 맡아 주었고, 노래방이 있는 타이 타이 레스토랑(한국인 경영)에서 태국 전통요리를 맛보고 라군비치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대서양 쪽 바닷가 강물과 합류하는 지점에 자리잡은 호텔은 경관이 기가 막혔다. 눈 앞으론 테이블마운틴이 위용을 자랑하듯 서있고, 은모래가 깔린 해변은 더할나위 없이 시원하였다. 설명에 따르면 테이블마운틴 바위속 광물에서 나오는 양 이온과 바닷물의 음 이온이 합하여 인체에 참 좋다고 한다.
여장을 푼 우리는 항해자들의 초기 상륙지점인 워터프론트(도시와 항구가 시작된 곳이라 하여 'Mother City'라 한다)부터 관광하였다. 아프리카의 상품이 거의 다 모여 있다고 한다. 단장 내외분과 함께 아쿠아리움 가는 길을 물어 물어 가까스로 암모나이트 화석을 샀다.「Ammonite Fossils 180million years old」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얼마나 반짝거리고 좋던지 과히 보물만 같았다.


  ▲ 숙소인 라군비치호텔에서 바라본 케이프타운의 상징 테이블마운틴.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찬송을 이 산을 염두에 두고 지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마음의 고향같은 산이란다. 장로성가단20년사 축시에도 나오는 <불쑥불쑥 솟아올라 덩실덩실 춤을 추는 산/아다지오로 흐르다 알레그로 비바체로 내려오는 저 능선의 오라토리오> 같은 산이다. 대서양의 파도와 바닷바람이 그렇게 시원할 수 없었다.

○ 김형규 목사님과 나눈 이야기

  호텔 조식을 먹으며 고신대 신학과 시절 신약원어(헬라어) 은사셨던 김목사님과 정담을 나누었다. 당시 인기 교수이자 학내 문학써클 <로뎀문학회> 지도교수시기도 한 목사님은 선교의 강력한 도전을 받아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인니, 필리핀, 아프리카에서 평생을 보내신 분이다.
  <정확한 말과 비슷한 말의 차이는 보름달과 반딧불의 차이와 같다>
는 마크 트웨인의 이야기와 한국 문단의 동향 등을 이야기하시면서 어제 드린 내 시집과 크리스천문학을 밤새워 읽었다고 하셨다.
  나의 처녀시집 <흰금낭화같은 그대>를 드리면서 금낭화(Bleeding Heart)의 꽃말이 <저는 당신에게 한없이 복종하고 싶어요>라 했더니 영문학자답게 <퍼펙트 오비디언스> 하신다.
  남아공에는 <보쉬>란 지명이 많은데, 영어의 <부시>와 같은 말이라 하신다. <덤불>이 꽤나 많았던 모양이다. 스텔렌이란 사람이 개척하면 <스텔렌보쉬> 식으로 이름이 붙었다고 하셨다.
  나중에 바리톤 한성권 장로 부인 김순영 권사님과 <교수님이 어떻게 그런 결단을 하셨을까>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행복한 돼지로 살고 있는 우리가 엉터리>라는 권사님의 말씀에 절로 고개가 수그러졌다.
  조식으로 나온 복숭아를 하나 깎아 먹었는데, 푸른 빛깔에 단단한 것이 꼭 남경도 같았지만 살은 누르고 황도처럼 맛이 좋았다. 리치란 과일과 호박같은 파파야도 맛이 괜찮았다.

○ 테이블마운틴 천백 미터 산상에 울려퍼진 찬송가

  고급주택이 밀집해 있는 언덕 위 라이언헤드峰을 지나 산중턱까지는 버스로 올랐다. 군데군데 이발한 것 같은 이태리소나무가 군락을 이루어 벋어있었다. 줄을 서서 암벽을 기어오르는 고속 케이블카를 탔다. 로프 하나에 매달려 수직으로 된 암벽을 단숨에 차고 오르자 <와아~!> 하고 탄성이 절로 쏟아졌다.
  테이블산 정상은 야생화의 천국이었다. 밑에서 보던 밋밋한 산이 아니었다. 셀 수도 없는 꽃들이 저마다 피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나는 처음 보는 식물군에 놀라 셔터 누르기에 여념이 없었고...<12사도 대협곡>으로 구름이 진을 치고..일몰의 장관과 함께 흰빛으로 떠오르는 보름달을 바라보며 황혼의 한 때를 행복감에 싸여 보냈다.
  멀리 만델라 대통령이 이십칠 년 연금생활 중 20년간 유배됐던 로빈섬이 보였다. 국빈이 오면 헬기로 구경시키고, 한 달 전에 예약을 해야 가볼 수 있다는 그 섬에서 <내 때가 반드시 올 것>이라고 낙망치 않고 미래를 준비하며, 사람들을 가르치고, 운동으로 건강관리를 한 지도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백인에 대한 복수보다는 평화주의자로 나라를 잘 다스렸고, 정권을 물려준 뒤로는 시민과 함께 조깅하며 악수를 나누던 금세기의 위인이다.
  우리는 정상의 산장 식당에서 저녁을 먹은 다음, 정원에서 즉석 찬양을 하였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화음이 울려퍼지자 모였던 사람들이 <브라보~><원 모어!>를 외치며 함께 노래를 불렀다. <본어게인>파에 속하는 경건한 부인과 아이들이 다가와 찬양에 감사를 표하기도 하고, 스코틀랜드에서 온 여행객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어떤 관광객은 일행 속으로 들어와 함께 합창을 하기도 했다.
  케이블카를 기다리면서 김형규 목사님과 남십자성, 큰개자리, 작은개자리, 궁수자리(오리온座)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웬걸! 줄이 줄어들지 않는다. 83년만에 케이블카가 고장난 것이다. 새벽까지 다섯 시간을 추위에 떨면서 기다린 끝에 산을 내려올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맨몸으로 하산을 하다 한 사람이 절벽에서 떨어져 후송하느라 더 늦어졌다고 한다. 새벽에야 호텔로 돌아온 일행은 다음날 일정을 하나 줄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산 정상에서의 식사와 함께 나눈 정담들, 단원들과 함께 내려다 본 야경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 희망봉으로


  ▲ 희망봉에서 영산대 이상훈 교수와 함께. 뒤에 보이는 뾰죽한 바위가 대서양과 인도양의 분기점이다.

  고단한 밤을 보내고 다시 행장을 추스려 희망봉으로 향했다. 테이블마운틴 뒤쪽을 돌아가는 길은 경관이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수많은 건설 인원이 희생됐다는 절벽 해안길을 달리며, 난생 처음 보는 들꽃의 바다 앞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야생 원숭이(Baboon)와 산양(스프링복), 타조가 자연 속에서 뛰놀고, 나비와 각종 새들이 나르는 모습에 그만 정신을 빼앗기고 말았다. 정말 황홀하였다. 가도가도 끝없는 꽃밭의 연속이었다. 희망봉 아래 멋진 바닷가 <투오션즈>식당에서 씨푸드로 식사를 하고 등산용 전철을 타고 가파른 산길을 올랐다. 로프를 이용한 전철은 두 대로 운행되고 있었는데, 교차 지점에서 두 개의 선로로 나뉘었다가 다시 하나로 합쳐졌다. 대서양과 인도양이 갈라지는 지점에 서서 우리는 기념촬영을 했다. 잔잔하고 온유하며 평온한 인도양과는 달리 차고 사납고 파도가 심하다는 대서양. 푸르기만한 바다, 맑기가 수정같은 바닷빛을 보며 창조의 신비를 또 한 번 찬송하였다. 단원들의 맑은 화음이 희망봉을 수놓자 모인 관광객들이 환호를 올렸다. 나는 동료들의 성화에 못이겨 <희망봉에서>란 제목의 시를 한 편 썼다.

  마주 보면 닮아간다는 그 말이 맞다면
  난 진종일
  당신의 그 미소만 바라볼 테야
  그댈 바라볼수록 내 사랑이 깊어진다면
  당신의 웃음띤 눈동자만 바라볼 테야
  내 사랑이 깊어질수록 그댈 닮아간다면
  걸을 때마다 찰랑이던 치맛자락
  진종일 당신만 생각할 거야
  희망봉 그 푸르런 물빛만 바라볼 거야

  나도
  저 산양처럼
  바윗돌 위에서 한낮을 꼼짝않고
  서 있어야지
  저 시커먼 타조나 개코원숭이마냥
  이것저것 집적이거나
  물결 사나운 대서양으로가 아닌
  불탄 곳에 더 잘자란다는 공 모양의
  프로테아 꽃이나
  미모사 잎에 향 없는 오동꽃을 피우는
  현란한 자카란다
  남아프리카 아가팬서스 구근처럼
  내 선 곳 깊이 뿌리 박고 살리
  GOOD HOPE
  그 희망을 가슴에
  늘
  품고서

  원래는 <폭풍의 곳>이란 이름이었는데, 포르투갈 국왕이 <희망봉> (Cape of Good Hope)으로 명명했다고 한다. 참 잘 지은 이름이다. 유럽인들이 평생에 한 번 오기 위해 저축을 한다는 희망봉! 국기가 박힌 기념 티스푼과 희망봉이 새겨진 커다란 클립, 사슴 장식의 작은 종을 사고 돌아오는 길에 돌공장을 들러 준보석을 세공하는 모습을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는 망고처럼 생긴 바오밥나무 단단한 열매 하나와 동전세트를 기념으로 샀다.
  희망봉 가는 해변을 끼고 달리는 기찻길은 볼수록 아름다왔다. 우리는 이런 기찻길이 왜 없을까? 해운대 구덕포 모롱이를 지나면 동해북부선 정동진 부근에서야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해변열차의 모습이 정말 부러웠다.  
  저녁에는 한국인 유학생 선교사 가정과 함께 경관 좋은 스텔렌보쉬山 아래 수련원에서 양고기 바베큐를 나누어먹으며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연못엔 오리와 백조가 놀고 수양버들 가지엔 새들이 집을 지어 석양의 스텔렌보쉬산과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시켰다.    

○ 세계3대 식물원 커스텐보쉬(Kirstenbosch)에서

  테이블山은 구름을 쓰고 있다. 대서양은 여전히 파도 겹을 일으키며 포말을 남기고, 자동차 행렬은 도로를 메운다. 해변을 거니는 정다운 모습과 베란다에 앉아 바람을 맞는 모습..김상호 장로님과 해변을 거닐며 조개껍질을 주웠다. 거무스레한 모래알은 잘고 단단하였다.
  <일행 중에 식물학자가 한 분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 분에게는 정말 꿈같은 시간이 될 것입니다> 하는 김영애 선교사님의 멘트가 있자, 우리가 탄 버스는 아름다운 테이블마운틴 산록에 자리잡은 국립식물원으로 들어선다. 입장료는 우리 돈으로 5천원 정도. 수많은 아가팬서스 꽃들이 짙은 숲과 함께 맞아준다. 원내는 정말 대단하였다. 솔체꽃을 닮은 케이프 스카비우스, 해국을 닮은 부시 펠리샤, 페라고늄, 우리 각시석남을 닮은 옷걸이 히스(Coat-hanger Heath)..아프리카 물망초, 꽃방망이를 이룬 마쉬 불비넬라 등 수많은 꽃들이 반겨주었다. 무엇보다 붉은빛의 강렬한 레드 디사(야생란의 일종으로 무척 아름답다)와 온실 속의 커다란 바오밥나무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여인들은 꽃을 배경삼아 사진을 찍고 나는 꽃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저 생명 강가에서 나 기쁨에 겨워>란 찬송이 나도 몰래 터져 나왔다.
  흥겨워진 단원들은 계단에 줄지어 앉아 나의 즉석 강의를 들은 다음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를 합창하였다. 나무와 풀과 꽃이 잘 조화된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한 폭의 풍경이 된 단원들과 가족들이 한데 어울려 행복한 한 시간을 보냈다.
  식물원 서점에 가서 꽃씨와 식물원 관계 서적을 사고, 내 신분을 밝히자 나이든 원장이 손을 잡고 흔들며 반가와 한다.


  ▲ 세계3대식물원의 하나인 커스텐보쉬 식물원의 천국 같은 모습. 나라꽃 <프로테아>는 황적색의 육중하게 생긴 꽃으로 불난 곳에 더 잘 자라고, 아이들이 공처럼 던지고 놀았다고 한다.

  식물원에서의 벅찬 감동을 간직한 채 에이켄달 와이너리로 갔다. 마침 날씨가 좋아 대서양 바람같은 산들바람이 쉴새없이 불고, 끝없이 이어지는 포도원과 언덕으로 이어지는 밭들이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우리는 능소화 흐드러지게 핀 나무그늘에 앉아 달콤한 포도주로부터 드라이한 고급품까지 시음을 하며 타조 고기를 맛보았다. 오랜만의 휴식이었다. 에이켄달(도토리 도시란 뜻이라 한다) 식당에서 이 나라 전통음식 <바부띠>로 식사를 하고 옛 총독의 별장으로 구경을 갔다. 모싯대와 양각채, 겹왕원추리, 디기탈리스, 데이지 같은 아름다운 꽃이 만발한 대 장원이었다. 무엇보다 이스라엘에서 받아온 씨가 발아해 우리집 뜨락(초애원)에서도 잘 자라고 있는 백향목, 그 백향목을 만나서 반가왔다. 열매는 잣나무 같고 잎은 향나무 같아서 잣 백(栢)에 향기 향(香)자, 그 백향목 씨앗을 몇 개 따서 단원들과 나누었다.
  김목사님과 몇몇 장로님들은 나무 그늘에서 얘기꽃을 피웠다. 김목사님이 아프리카 어느 오지 마을에 가자 이십대 아가씨 때 들어와 사십대가 될 때까지 혼자서 사역한 한 동포를 만나셨단다. 처음엔 곧 떠날 계획이었지만 차마 떨치고 떠날 수 없었단다. 아무도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한 부인의 병을 간호하여 낫게되자 그 자녀들을 보내주어 이제는 교회도 세웠지만, 자신은 몇 차례 말라리아에 걸려 오랜만에 목사를 만나 반가우면서도 바로 걷지도 못하더라는 이야기...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목사님은 아예 비자를 내어와서 아프리카를 한 번 순방해보자고 제안을 하셨다.


  ▲ 김형규 선교사가 사역하는 스텔렌보쉬의 와이너리. 산들바람이 불어와 파라다이스 같은 느낌을 주었다.  

○ 케이프타운한인교회에서의 찬양

  케이프타운한인교회는 화란인교회를 빌어 예배 처소로 쓰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나누인 초대교회와 함께 우리 성가단을 초청하였다. 화란인교회당은 정말 멋졌다. 설교를 맡으신 김형규 목사님은
  <땅끝에서 만나 예배와 찬송을 드리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교회가 왕성하고 또 왕성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어 앞으로 놀라운 일이 이루어질 것입니다..거듭거듭 회개하는 사람이 살 수 있습니다. 주를 섬기되 마땅히, 온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섬깁시다(수24:14-24)>
하고 말씀하신다.
  파이프오르간의 웅장한 소리에 맞추어 찬양이 시작되자 동행한 부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한 공명과 화음이 이루어지도록 지어진 교회당, 우리는 선교사님께서 특별 제작한 나무 계단 위에서 기량껏 찬양을 하였다. 두 교회의 교우들과 유학생들이 환호하며 좋아하였다. 공연이 끝나자 김형규 선교사님은 <할수만있으면 밤새워 찬양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밤 잠을 못 잘 것 같습니다>고 하시면서 북받치는 감동을 억제하시느라 애쓰시는 모습이 역력했다.
  우리는 보석이 깔린 것 같은 야경을 보며 기쁜 마음으로 숙소로 돌아왔다. 장로님들과 지휘자께서 라면을 끓여 후루룩 드셨다.  

○ 사파리 가든루트

  사파리를 축소한 형태의 관광지로, 산양 등의 초식동물과 맹수를 따로 격리하여 자연 속에 살게 하고 있었다. 이 나라 지폐에 나오는 코뿔소와 코끼리, 얼룩말, 사자, 들소 뿐 아니라 치타와 표범, 산양들과 사막여우 등을 모두 볼 수 있었다. <고양이보다 안전하다>는 보아뱀의 사촌격인 큰 뱀을 목에 둘러보는 코스가 있었는데, 일행 중 제일 어린 세빈군과 항상 용감한 이문걸 장로가 먼저 지원하였다. 모두들 겁을 잔뜩 먹고 바라보고 있을 때 누군가가 부인에게 뱀모양의 작대기를 갖다대는 바람에 혼비백산한 부인이 우황청심원을 먹는 헤프닝이 벌어졌다.


  ▲ 사파리에서 만난 기린. 평화롭게 나뭇잎만 뜯고 있었다.

  아프리카 초원에 부는 바람은 대단했다. 한여름인데도 어찌나 추웠던지 커다란 관람용 트럭을 타고 담요를 뒤집어 쓰고 동물들을 찾아 다녔다. 오죽했으면 <누가 아프리카가 덥다 그랬노? 니 가봤나!>하고 외쳤을까. 기다란 가시 사이로 난 미모사 같은 잎을 먹느라 우리가 접근해도 꼼짝을 않는 기린이나, 지프를 가로막고 긴 코를 내밀어 먹을 걸 달라는 코끼리는 견딜만 했지만,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는 사자는 무서웠다. 쇠창살이나 유리창이 없는 차여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지만 여유를 부리는 안내자들...이중으로 된 철제 문을 빠져나오자 <살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밤새워 <大田園  사파리에서>란 시를 한 편 썼다.

  여기는 아프리카
  남십자성
  대초원 능선 위로 밝다
  사랑하는 이가 있다는 건
  진정 아름다운 일이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저 별을 나란히 볼 수 있다는 건
  더더욱 가슴 뛰는 일이다
  오리온座
  보름달 함께 내려다 보는 밤
  어디선가 밤머구리 소리
  쏴아아 거센 바람결 속에
  꿈결로 흐르는데
  야수들은 능선에 기대어
  풀벌레 소리 함께 잠이 들고
  나는 데치 골풀 지붕의 방갈로에서
  얼룩말 무늬 이불을 덮고
  순하기만 하던
  코끼리 눈자위와 함께 잠이 든다

  사랑하는 이가 있다는 건
  진정
  행복한 일

  이 詩를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낭송하였는데, 단장께서 마이크를 빼앗아 <아! 행복하도다. 이런 시인이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이> 하셨다.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다운 풍광이 모두를 시인이 되게 하였다. 어떤 장로님은 <양들이 뜨거운 볕을 피해 고개를 앞선 양의 사타구니 밑에 넣는 걸 봤다>고 말씀하시는가 하면, 대초원에서 잠이 깬 오늘 아침의 신선함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는 분도 있었다.  


  ▲ 사파리의 방갈로 호텔





○ 우리는 아프리카로 간다
  
  미지의 나라, 그 신비의 베일에 쌓인 아프리카를 보기 위해 왕도였던 김해를 떠난다. 영낙없는 새의 모습을 한 항공기의 견고한 날갯죽지 편향각이 굉장하다. 관제사가 손을 흔들고 공군기 한 대가 긴 배기연을 달고 사뿐히 내려 앉는다. 양력(揚力)을 받기 위해 앞으로 숙인 은익 위로 아침햇살이 눈부시다.
  마침내 우리 일행 58명을 태운 KE0615機가 창공을 차고 올랐다. 사람의 발자취가 산능선에 길을 냈다. 구름 아래 공사가 한창인 거가대교가 보이고 운해 속으로 빠져들더니 눈밭 같은 성층권 위를 날고 있다. 육지엔 오색 그림, 하늘엔 무채색과 주황빛의 그림을 펼쳐놓으시고 조물주께선 심심치 않으시겠다.
  첫 기내식은 소고기덮밥, 베이컨샐러드에 레드와인 한 잔, 아기 주먹만한 찹쌀떡 두 개...꼭 소꼽살이 같다. 그래도 아침을 거른 단원들에겐 진수성찬이나 진배없다.

○ 홍콩 - 향기 가득한 도시

  깃털 하나 없는 날개가 잘도 난다. 翼鳥를 닮은 기체가 구름을 뚫고 제 그림자를 바다에 비추며 내려앉은 기착지는 홍콩. 방긋 웃으며 전송하는 애띤 얼굴의 여승무원.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 일, 재미없어요!> 한다. 예전엔 선망의 대상이었던 스튜어디스도 이젠 힘든 직종이 됐나 보다. 우리가 타고 온 비행기는 다시 부산으로 돌아간단다.
  초콜렛을 <쭈글레>, 화장실을 <워따똥따>라고 한다는 곳. 남성 존칭이 따꺼(大兄)여서 <이씨>를 <이닦어>라 하여 한바탕 웃었다. 가이드 용 등받이가 있는 버스는 우리 나라 가을 같은 날씨 속을 동양 최장의 현수교라는 <靑馬대교>를 지나 홍콩섬으로 들어간다. 세관은 <海關>, 빨간 색의 택시는 <的士>, 버스는 <巴史>다. <부히냐 Bauhinia>라는 市花와 노랑 아카시 꽃을 처음 보았다. 붉은병솔나무와 아열대식물이 겨울인데도 나무마다 꽃을 피웠고 야자수잎이 늘어져 남국정취를 자아낸다. 습도가 높아(보통 90%를 상회한댄다) 무좀과 관절염 약이 발달하고, 보습효과로 피부미인이 많으며, 고혈압과 당뇨병이 드문 장수국이라 한다. 그렇지만 호텔이나 집에 난방이 없고, 버스 안은 습기 때문에 에어컨을 늘 가동하여 추웠다. 물가는 싸지만 담배가 4천원이고, 남자 자살율이 높단다. 두 가지 이상 일을 가져야 하고, 여자에게 용돈을 줘야 하고, 남자가 밥하고 빨래하는 곳이라고 하여 우리는 혀를 내둘렀다.


  ▲ 홍콩 섬 앞바다를 지나가는 유람 범선 靈鴨(Dukling)

  미로가 끝이 없는 홍콩섬 풍물시장 <스텐리마켓>과 옛 총독 관저를 둘러보고, 기념품을 샀다. 나는 전부터 갖고 싶던 목각 명함꽂이와 홍콩항을 새긴 작은 도자기 종을 샀다. 꽃집에서 양란과 노랑 붓꽃, 붉은색 가는잎(프레임)나리, 버들개지, 분홍겹동백과 백매화, 금잔은대 수선화, 튤립, 순백의 글라디올러스, 대륜종 아마릴리스, 노랑색 백합 구경을 했다.
  T1 정차근 장로님 처제인 홍콩제일교회 강기화(姜其和) 집사의 초청으로 해물전문집인 <明星海鮮舫>에서 <사틴> 요리를 먹었다. 새우와 다금바리, 브로콜리와 불고기, 안량미밥을 오리껍데기 요리에 싸먹었다.
  밤이 이슥해지길 기다려 요하네스버그(約翰尼斯堡)행 비행기를 탔다. 장장 열 세 시간의 대장정이다. 김해공항에선 끄떡없었던 수화물이 중량초과로 천만원의 차아지를 물어야 한다는 실랑이를 벌인 끝에 탑승한지라 자신도 모르게 천하장사도 못 든다는 눈거풀이 스르르 내려왔다.

○ 남아공 교민과 비행기 안에서 나눈 이야기

  사전지식이 없던 내게 교민과의 옆자리 동석은 행운이었다. 정도명이란 인상좋은 젊은이였는데, 가족을 김해에 두고 매부의 사진관과 무역업을 돕고 있다고 하였다. 흑인들이 사진 찍는 걸 좋아해서 남아공에서는 사진관이 성업중이라 한다. 화란계와 영국계 백인 비율이 6:4로 우리 나라의 11배 크기. 포도 농사가 잘 되는 지중해성 기후로, 교민들은 가발과 속도감지카메라, 콘돔 납품으로 성공한 이가 많다고 한다. 특산물로는 금, 다이야, 백금, 카페인 없는 천연장수茶 <로이보스 티>와 칼라하리사막에서 나는 <악마의발톱> 관절약, 변비와 아토피에 좋은 알로에 제품, 포도주와 무화과 등 말린 과일이라 말해주었다.

○ 여기는 아프리카

  몇 시간을 잤는지 모른다. 날짜변경선을 지나고 시계를 7시간 뒤로 돌려놓았으니...조벅(요하네스버그의 약칭)에 도착하니 아침이었다. 고려신학대학원 출신의 정은일 목사(조벅한인교회)와 안내를 맡은 김영애 선교사(고신대 은사 김형규 교수 부인)께서 반갑게 맞아주셨다. 2010 월드컵을 앞두고 공항 확장이 한창이다. 밖으로 나오자 하얗게 핀 자스민 꽃밭이 백색 아가판서스 꽃들과 함께 반겨준다.
  해발 1,750m 고산지대, 열대야가 없고 연평균 15,6도C의 쾌적한 도시란다. 승하차시 차체가 통채로 내려가는 화장실 달린 버스를 타고 정원이 아름다운 게스트하우스로 갔다. 분홍빛 수국과 데이지, 늘어진 야자수와 처음 보는 홍단심계 대륜종 무궁화, 자귀나무를 닮은 분홍빛깔의 꽃, 고사리류와 열대식물이 아름다왔다. 한식과 양식을 곁들인 맛난 식사를 하고 아프리카 부족마을(민속촌)로 갔다. 말로만 듣던 아프리카 초원이 보였다.

○ 부족마을에서 아프리카를 체험하고

  코끼리 두개골과 상아로 장식한 입구로 들어가자 현란한 치장을 한 토인들이 달려나와 요란한 춤과 노래로 환영을 한다. 나보다 덩지가 큰 추장 차림의 흑인이 어깨동무를 하고 사진을 찍자 한다. 커다란 널판지로 만든 원시적인 실로폰과 통나무를 파서 만든 손잡이북을 둥둥 울리며...담장을 예쁘게 칠하는 엔제멜레 부족, Sotho, Xhosa, Ped, 용감무쌍한 줄루族 등 원주민 다섯 부족의 특징을 담은 가옥들과 생활 도구를 재현해 놓았는데, 알로에(사포나리아)와 일일초, 칠변화와 병아리를 거느린 암탉, 쇠비름, 나팔꽃과 호박꽃이 반가왔다. 우리네 옛집같이 싸리울이 있고 밥짓는 화덕도 있었다. 널찍한 돌판 위에 옥수수와 콩을 갈아 설탕을 섞어 먹어보라 하거나, 말린 굼벵이와 막걸리 비슷한 토속주를 마셔보라 한다. 코사족(만델라 전 대통령도 이 부족인데, 온유한 성품에 약간 동양적인 풍모가 있다고 한다) 집에 들어가 생활모습을 구경하였다. 여자들은 문을 열어도 안보이는 곳에 모여 앉게 했단다. 페드족은 절구통이 있어 한결 정다워 보였다. 3개월 된 흑인아기가 인형처럼 귀여워 정대자 교수가 품에 안아 본다. 우리는 광장에 모여 '어메이징 그레이스' 'God is so good' 등을 합창했는데, 추장이 나와 지휘를 하며 즐거워하는 바람에 한바탕 웃음꽃이 피었다. 공연장으로 자리를 옮겨 그들의 전통춤과 음악, 용감하기로 이름난 무사들의 무예시범을 관람했다. 매기고 받고, 데스칸트도 있는 그들의 전통 음악에 절로 신이 났다. 나중엔 이문걸 장로와 방패를 들고 칼싸움을 하자고 하더니, 관광객과 함께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면서 춤을 추었다. 이들의 악수법이 특이했는데, 처음엔 보통 우리가 하는 식으로 하고, 곧바로 서로의 엄지손가락 뿌리를 잡은 다음 또 한 번 보통 악수를 하였다.
  나는 준보석 원석과 조롱박으로 만든 기하학적 무늬의 장식품을 기념품으로 샀는데, 대원들은 가죽으로 만든 모자를 많이 샀다. 갖고 싶던 목각들은 무서운 탈이나 동물 모양이어서 사지 않았다.


  ▲ 아프리카 토인마을 줄루족 추장과 함께. 그 곁은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며 여행에 도움을 많이 준 영도 동삼교회 변도우 장로.

○ 호텔에서의 첫밤

  INDABA(아프리카부족회의)호텔로 가면서 본 흑백 마을의 대비가 대원들을 경악시켰다. 6.25 전쟁통의 판잣집과 진배없는 흑인마을과 정원수가 숲을 이룬 백인마을의 양극화는 이 나라가 풀어야 할 큰 숙제였다. 큰 나무들과 피라칸스, 아프리카 아가판서스 등으로 뒤덮힌 아름다운 특급호텔에 들어서자 시원한 주스를 대접한다. 객실엔 하트 모양의 초콜렛을 놓아 두었다. 이 작은 것 하나 하나가 먼길을 온 나그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하얀 아이리스(붓꽃)가 예쁘게 피고, 신기하게도 배롱나무가 꽃을 피우고 있고, 자카란다 꽃이 데치 지붕 위에 떨어지고, 커다란 새가 넓적한 부리로 호텔방 문을 노크하는 전원 속 호텔, 벨보이가 전동차로 짐을 날라주는 넓은 경내가 맘에 들었다.
  체크인을 마치고 한인교회로 가서 첫 연습을 하고 갑부로 소문난 황재길 장로께서 베푼 만찬을 들었다. 여성도들께서 정성껏 마련한 부페 한식엔 말로만 듣던 양고기도 나왔다. 망고 등 남국의 과일과 맛난 쌈장에 풋고추 맛은 정말 기가 막혔다. 천 명이 넘게 모인다는(고신측 해외총회에서 가장 크다) 교회당 건물은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백인교회를 철거하며 나온 스테인드글라스도 아름다왔고, 오크로 만든 장의자도 문화재감이었다. 동행한 장로님들은 평화교회를 이렇게 지어 보라 하였다. 중정(中庭)엔 아기 고양이들이 재롱을 피우고, 풀벌레가 찌르르 울었다.
  만찬 초대에서 돌아와 박종민 장로님과 한 방을 썼는데, 장로님께서 한국 시각과 현지 시각으로 새벽기도를 하시는 바람에 두 번이나 기도를 드렸다. 이번 여행을 위해 기도하던 중 보험금과 외환통장이 나와 동참케 된 장로님은 기도하는 재미를 톡톡히 본다 하셨다.

○ 낯선 곳에서의 첫 주일

  장로장립 후 처음으로 맞는 낯선 곳에서의 주일, 우리 성가단이 찬양을 하고, 동행한 정대자 권사(최진석 장로부인)가 특송을 하였다. 150년 된 백인교회 장의자와 스테인드글래스가 멋졌다. 1991년 교회 창립 후 처음으로 남성 찬양과 맛난 초콜렛을 닮은 소프라노 음색이 유년부까지 5백 명이 출석하는 교회당 안에 울려퍼지고...정은일 담임목사님은 <예언- 축복의 말 - 하기를 힘쓰자>는 요지의 설교로 단원들 마음에 큰 감명을 주었다. 역시 말씀의 힘이 대단함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성도들과의 식사 교제 후엔 네덜란드인 개척기념관과 6.25동란 참전기념비가 있는 대통령 관저 <프로테리아>를 둘러보았다. 개척자들의 고난에 찬 여정이 마차와 생활도구, 부조와 그림 등으로 나뉘어 전시되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커다란 옛 성경책이 눈길을 끌었다. 설명에 영을 올리던 화란계 할머니는 우리가 코리아에서 온 장로들임을 알곤 어찌나 기뻐하던지...유물과 함께 포즈도 취해 주었다.
  문지기도 경비대도 없는 평화로운 대통령궁엔 원주민들이 목각인형을 팔고 있었다. 장미와 여러 색의 데이릴리(원추리. 갈색 원추리는 처음 보았다), 아마릴리스, 다알리야, 무궁화와 잘 다듬어진 수목들로 아름다운 언덕엔 평화가 깃들고, 고즈넉하기 그지없는 모습에 단원들은 탄성을 올렸다. 집무실이 있는 관저 건물은 정말 웅장하고 기품이 넘쳤으며 마치 꿈 속의 낙원 같은 모습이었다.


  ▲ 요하네스버그에서 가까운 행정수도 <프레토리아>에 있는 대통령궁. 식물원처럼 아름답고 정갈하게 잘 다듬어져 있었다. 동료들이 <시인의 눈물은 더 짠가요>, <좋은 시 구상했나요> 하고 물어왔다. 남아공엔 입법수도 사법수도가 따로 있어 3권분립이 잘 되어있다.

  엉겅퀴를 닮은 붉은 야생화 가득한 길로 조벅 시내로 들어가 최초의 교회와 중세풍의 시청 건물을 보았다. 남미 원산의 자카란다(Zacaranda- 미모사 잎에 오동꽃을 닮은 교목) 보라색 꽃이 봄에 피면 관광객이 더 많이 찾는단다. 한인교회로 돌아와 한식과 현지식으로 저녁을 먹은 다음 <부산장로성가단의밤> 연주회를 가졌다. <주를 찬양하세><내 주 되신 주를 참 사랑하고><영광의 주님 경배하세><테너독창/정차근 - 갈보리 보혈을 나는 믿네><주여 내가 당신을 사랑합니다><참 좋으신 주님><인도하시는 주님><소프라노독창/정대자 박창숙 -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나님의 은혜><예수 이름 찬양하라><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내 주는 강한 성>을 찬송하였다. 앵콜송으로 <예수 사랑하심은>과 <고향의봄>을 성도들과 함께 불렀는데, 이역만리 교민들이 환하게 웃으며 함께 여울지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며 단원들의 가슴도 한껏 뜨거워졌다.
  담임목사는 인삿말을 통해 <男聲 노래가 정말 좋다. 어찌나 부러운지 단원들을 모두 붙잡아 여권을 뺏고만 싶다>고 격찬을 하였고, 황장로님은 <악마의발톱> 茶를 선물하셨으며, 고향 친지를 만난 성도들은 손을 잡고 놓을 줄을 놀랐다. 나는 가져간 처녀시집 <흰금낭화같은 그대>와 부산크리스천문협의 연간집을 개관을 앞둔 <북까페>에 증정하였다.


  ▲ 요하네스버그한인교회의 아름다운 중정

○ 아프리카 최남단 케이프타운 - 세계 5대 관광지 중 하나

  이튿날 아침. 열대 과일과 양식으로 풍성한 호텔 조식을 끝낸 후 <사우스아프리카항공>으로 지구의 땅끝 케이프타운으로 날아갔다. 국내항공인지라 낮게 나르는 기체에서 광활한 칼라하리 사막과 줄지어 선 산맥들, 끝없이 이어지는 농경지와 대초원을 바라보았다.
  케이프타운 공항에서는 김형규 선교사께서 반겨주셨다. 버스에서 내리자 무장한 정복 경찰이 총에서 손을 떼지 않은채 경호를 맡아 주었고, 노래방이 있는 타이 타이 레스토랑(한국인 경영)에서 태국 전통요리를 맛보고 라군비치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대서양 쪽 바닷가 강물과 합류하는 지점에 자리잡은 호텔은 경관이 기가 막혔다. 눈 앞으론 테이블마운틴이 위용을 자랑하듯 서있고, 은모래가 깔린 해변은 더할나위 없이 시원하였다. 설명에 따르면 테이블마운틴 바위속 광물에서 나오는 양 이온과 바닷물의 음 이온이 합하여 인체에 참 좋다고 한다.
여장을 푼 우리는 항해자들의 초기 상륙지점인 워터프론트(도시와 항구가 시작된 곳이라 하여 'Mother City'라 한다)부터 관광하였다. 아프리카의 상품이 거의 다 모여 있다고 한다. 단장 내외분과 함께 아쿠아리움 가는 길을 물어 물어 가까스로 암모나이트 화석을 샀다.「Ammonite Fossils 180million years old」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얼마나 반짝거리고 좋던지 과히 보물만 같았다.


  ▲ 숙소인 라군비치호텔에서 바라본 케이프타운의 상징 테이블마운틴.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찬송을 이 산을 염두에 두고 지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마음의 고향같은 산이란다. 장로성가단20년사 축시에도 나오는 <불쑥불쑥 솟아올라 덩실덩실 춤을 추는 산/아다지오로 흐르다 알레그로 비바체로 내려오는 저 능선의 오라토리오> 같은 산이다. 대서양의 파도와 바닷바람이 그렇게 시원할 수 없었다.

○ 김형규 목사님과 나눈 이야기

  호텔 조식을 먹으며 고신대 신학과 시절 신약원어(헬라어) 은사셨던 김목사님과 정담을 나누었다. 당시 인기 교수이자 학내 문학써클 <로뎀문학회> 지도교수시기도 한 목사님은 선교의 강력한 도전을 받아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인니, 필리핀, 아프리카에서 평생을 보내신 분이다.
  <정확한 말과 비슷한 말의 차이는 보름달과 반딧불의 차이와 같다>
는 마크 트웨인의 이야기와 한국 문단의 동향 등을 이야기하시면서 어제 드린 내 시집과 크리스천문학을 밤새워 읽었다고 하셨다.
  나의 처녀시집 <흰금낭화같은 그대>를 드리면서 금낭화(Bleeding Heart)의 꽃말이 <저는 당신에게 한없이 복종하고 싶어요>라 했더니 영문학자답게 <퍼펙트 오비디언스> 하신다.
  남아공에는 <보쉬>란 지명이 많은데, 영어의 <부시>와 같은 말이라 하신다. <덤불>이 꽤나 많았던 모양이다. 스텔렌이란 사람이 개척하면 <스텔렌보쉬> 식으로 이름이 붙었다고 하셨다.
  나중에 바리톤 한성권 장로 부인 김순영 권사님과 <교수님이 어떻게 그런 결단을 하셨을까>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행복한 돼지로 살고 있는 우리가 엉터리>라는 권사님의 말씀에 절로 고개가 수그러졌다.
  조식으로 나온 복숭아를 하나 깎아 먹었는데, 푸른 빛깔에 단단한 것이 꼭 남경도 같았지만 살은 누르고 황도처럼 맛이 좋았다. 리치란 과일과 호박같은 파파야도 맛도 괜찮았다.

○ 테이블마운틴 천백 미터 산상에 울려퍼진 찬송가

  고급주택이 밀집해 있는 언덕 위 라이언헤드 峰을 지나 산중턱까지는 버스로 올랐다. 군데군데 이발한 것 같은 이태리소나무가 군락을 이루어 벋어 있었다. 줄을 서서 암벽을 기어오르는 고속 케이블카를 탔다. 로프 하나에 매달려 수직으로 된 암벽을 단숨에 차고 오르자 <와아~!> 하고 탄성이 절로 쏟아졌다.
  테이블산 정상은 야생화의 천국이었다. 밑에서 보던 밋밋한 산이 아니었다. 셀 수도 없는 꽃들이 저마다 피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나는 처음 보는 식물군에 놀라 셔터 누르기에 여념이 없었고...<12사도 대협곡>으로 구름이 진을 치고..일몰의 장관과 함께 흰빛으로 떠오르는 보름달을 바라보며 황혼의 한 때를 행복감에 싸여 보냈다.
  멀리 만델라 대통령이 이십칠 년 연금생활 중 20년간 유배됐던 로빈섬이 보였다. 국빈이 오면 헬기로 구경시키고, 한 달 전 예약을 해야 가볼 수 있다는 그 섬에서 <내 때가 반드시 올 것>이라며 낙망치 않고 미래를 준비하며, 사람들을 가르치고, 운동으로 건강관리를 한 지도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백인에 대한 복수보다는 평화주의자로 나라를 잘 다스렸고, 정권을 물려준 뒤로는 시민과 함께 조깅하며 악수를 나누던 금세기의 위인이다.
  우리는 정상의 산장 식당에서 저녁을 먹은 다음, 마당에서 즉석 찬양을 하였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화음이 울려퍼지자 모였던 사람들이 <브라보~><원 모어!>를 외치며 함께 노래를 불렀다. <본어게인>파에 속하는 경건한 부인과 아이들이 다가와 찬양에 감사를 표하기도 하고, 스코틀랜드에서 온 여행객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어떤 관광객은 일행 속으로 들어와 함께 합창을 하기도 했다.
  케이블카를 기다리면서 김형규 목사님과 남십자성, 큰개자리, 작은개자리, 궁수(오리온座)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웬걸! 줄이 줄어들지 않는다. 83년만에 케이블카가 고장난 것이다. 새벽까지 다섯 시간을 추위에 떨면서 기다린 끝에 산을 내려올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맨몸으로 하산을 하다 한 사람이 절벽에서 떨어져 후송하느라 더 늦어졌다고 한다. 새벽에야 호텔로 돌아온 일행은 다음날 일정을 하나 줄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산 정상에서의 식사와 함께 나눈 정담들, 단원들과 함께 내려다 본 야경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 희망봉으로


  ▲ 희망봉에서 영산대 이상훈 교수와 함께. 뒤에 보이는 뾰죽한 바위가 대서양과 인도양의 분기점이다.

  고단한 밤을 보내고 다시 행장을 추스려 희망봉으로 향했다. 테이블마운틴 뒤쪽을 돌아가는 길은 경관이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수많은 건설 인원이 희생됐다는 절벽 해안길을 달리며, 난생 처음 보는 들꽃의 바다 앞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야생 원숭이(Baboon)와 산양(스프링복), 타조가 자연 속에서 뛰놀고, 나비와 각종 새들이 나르는 모습에 그만 정신을 빼앗기고 말았다. 정말 황홀하였다. 가도가도 끝없는 꽃밭의 연속이었다. 희망봉 아래 멋진 바닷가 <투오션즈>식당에서 씨푸드로 식사를 하고 등산용 전철을 타고 가파른 산길을 올랐다. 로프를 이용한 전철은 두 대로 운행되고 있었는데, 교차 지점에서 두 개의 선로로 나뉘었다가 다시 하나로 합쳐졌다. 대서양과 인도양이 갈라지는 지점에 서서 우리는 기념촬영을 했다. 잔잔하고 온유하며 평온한 인도양과는 달리 차고 사납고 파도가 심하다는 대서양. 푸르기만한 바다, 맑기가 수정같은 바닷빛을 보며 창조의 신비를 또 한 번 찬송하였다. 단원들의 맑은 화음이 희망봉을 수놓자 모인 관광객들이 환호를 올렸다. 나는 동료들의 성화에 못이겨 <희망봉에서>란 제목의 시를 한 편 썼다.

  마주 보면 닮아간다는 그 말이 맞다면
  난 진종일
  당신의 그 미소만 바라볼 테야
  그댈 바라볼수록 내 사랑이 깊어진다면
  당신의 웃음띤 눈동자만 바라볼 테야
  내 사랑이 깊어질수록 그댈 닮아간다면
  걸을 때마다 찰랑이던 치맛자락
  진종일 당신만 생각할 거야
  희망봉 그 푸르런 물빛만 바라볼 거야

  나도
  저 산양처럼
  바윗돌 위에서 한낮을 꼼짝않고
  서 있어야지
  저 시커먼 타조나 개코원숭이마냥
  이것저것 집적이거나
  물결 사나운 대서양으로가 아닌
  불탄 곳에 더 잘자란다는 공 모양의
  프로테아 꽃이나
  미모사 잎에 향 없는 오동꽃을 피우는
  현란한 자카란다
  남아프리카 아가팬서스 구근처럼
  내 선 곳 깊이 뿌리 박고 살리
  GOOD HOPE
  그 희망을 가슴에
  늘
  품고서

  원래는 <폭풍의 곳>이란 이름이었는데, 포르투갈 국왕이 <희망봉> (Cape of Good Hope)으로 명명했다고 한다. 참 잘 지은 이름이다. 유럽인들이 평생에 한 번 오기 위해 저축을 한다는 희망봉! 국기가 박힌 기념 티스푼과 희망봉이 새겨진 커다란 클립, 사슴 장식의 작은 종을 사고 돌아오는 길에 돌공장을 들러 준보석을 세공하는 모습을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는 망고처럼 생긴 바오밥나무 단단한 열매 하나와 동전세트를 기념으로 샀다.
  희망봉 가는 해변을 끼고 달리는 기찻길은 볼수록 아름다왔다. 우리는 이런 기찻길이 왜 없을까? 해운대 구덕포 모롱이를 지나면 동해북부선 정동진 부근에서야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해변열차의 모습이 정말 부러웠다.  
  저녁에는 한국인 유학생 선교사 가정과 함께 경관 좋은 스텔렌보쉬山 아래 수련원에서 양고기 바베큐를 나누어먹으며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연못엔 오리와 백조가 놀고 수양버들 가지엔 새들이 집을 지어 석양의 스텔렌보쉬산과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시켰다.    

○ 세계3대 식물원 커스텐보쉬(Kirstenbosch)에서

  테이블山은 구름을 쓰고 있다. 대서양은 여전히 파도 겹을 일으키며 포말을 남기고, 자동차 행렬은 도로를 메운다. 해변을 거니는 정다운 모습과 베란다에 앉아 바람을 맞는 모습..김상호 장로님과 해변을 거닐며 조개껍질을 주웠다. 거무스레한 모래알은 잘고 단단하였다.
  <일행 중에 식물학자가 한 분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 분에게는 정말 꿈같은 시간이 될 것입니다> 하는 김영애 선교사님의 멘트가 있자, 우리가 탄 버스는 아름다운 테이블마운틴 산록에 자리잡은 국립식물원으로 들어선다. 입장료는 우리 돈으로 5천원 정도. 수많은 아가판서스 꽃들이 짙은 케이프타운한인교회는 화란인교회를 빌어 예배 처소로 쓰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나누인 초대교회와 함께 성가단을 초청하였다. 화란인교회당은 정말 멋졌다. 설교를 맡으신 김형규 목사님은
  <땅끝에서 만나 예배와 찬송을 드리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교회가 왕성하고 또 왕성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어 앞으로 놀라운 일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거듭거듭 회개하는 사람이 살 수 있습니다. 주를 섬기되 마땅히, 온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섬깁시다(수24:14-24)>
하고 말씀하신다.
  파이프오르간의 웅장한 소리에 맞추어 찬양이 시작되자 동행한 부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한 공명과 화음이 이루어지도록 지어진 교회당, 우리는 선교사님께서 특별 제작한 나무 계단 위에서 기량껏 찬양을 하였다. 두 교회의 교우들과 유학생들이 환호하며 좋아하였다. 공연이 끝나자 김형규 선교사님은 <할수만있으면 밤새워 찬양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밤 잠을 못 잘 것 같습니다>고 하시면서 북받치는 감동을 억제하시느라 애쓰시는 모습이 역력했다.
  우리는 보석이 깔린 것 같은 야경을 보며 기쁜 마음으로 숙소로 돌아왔다. 장로님들과 지휘자께서 라면을 끓여 후루룩 드셨다.  

○ 사파리 가든루트

  사파리를 축소한 형태의 관광지로, 산양 등의 초식동물과 맹수를 따로 격리하여 자연 속에 살게 하고 있었다. 이 나라 지폐에 나오는 코뿔소와 코끼리, 얼룩말, 사자, 들소 뿐 아니라 치타와 표범, 산양들과 사막여우 등을 모두 볼 수 있었다. <고양이보다 안전하다>는 보아뱀의 사촌격인 큰 뱀을 목에 둘러보는 코스가 있었는데, 일행 중 제일 어린 세빈군과 항상 용감한 이문걸 장로가 먼저 지원하였다. 모두들 겁을 잔뜩 먹고 바라보고 있을 때 누군가가 부인에게 뱀모양의 작대기를 갖다대는 바람에 혼비백산한 부인이 우황청심원을 먹는 헤프닝이 벌어졌다.


  ▲ 사파리에서 만난 기린. 평화롭게 나뭇잎만 뜯고 있었다.

  아프리카 초원에 부는 바람은 대단했다. 한여름인데도 어찌나 추웠던지 커다란 관람용 트럭을 타고 담요를 뒤집어 쓰고 동물들을 찾아 다녔다. 오죽했으면 <누가 아프리카가 덥다 그랬노? 니 가봤나!>하고 외쳤을까. 기다란 가시 사이로 난 미모사 같은 잎을 먹느라 우리가 접근해도 꼼짝을 않는 기린이나, 지프를 가로막고 긴 코를 내밀어 먹을 걸 달라는 코끼리는 견딜만 했지만,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는 사자는 무서웠다. 쇠창살이나 유리창이 없는 차여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지만 여유를 부리는 안내자들...이중으로 된 철제 문을 빠져나오자 <살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밤새워 <大田園  사파리에서>란 시를 한 편 썼다.

  여기는 아프리카
  남십자성
  대초원 능선 위로 밝다
  사랑하는 이가 있다는 건
  진정 아름다운 일이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저 별을 나란히 볼 수 있다는 건
  더더욱 가슴 뛰는 일이다
  오리온座
  보름달 함께 내려다 보는 밤
  어디선가 밤머구리 소리
  쏴아아 거센 바람결 속에
  꿈결로 흐르는데
  야수들은 능선에 기대어
  풀벌레 소리 함께 잠이 들고
  나는 데치 골풀 지붕의 방갈로에서
  얼룩말 무늬 이불을 덮고
  순하기만 하던
  코끼리 눈자위와 함께 잠이 든다

  사랑하는 이가 있다는 건
  진정
  행복한 일

  이 詩를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낭송하였는데, 단장께서 마이크를 빼앗아 <아! 행복하도다. 이런 시인이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이> 하셨다.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다운 풍광이 모두를 시인이 되게 하였다. 어떤 장로님은 <양들이 뜨거운 볕을 피해 고개를 앞선 양의 사타구니 밑에 넣는 걸 봤다>고 말씀하시는가 하면, 대초원에서 잠이 깬 오늘 아침의 신선함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는 분도 있었다.  


  ▲ 사파리의 방갈로 호텔  

○ 꿈만 같았던 방갈로 호텔에서의 하룻밤


  ▲ 숙소에서 바라본 아프리카 대초원의 아침

  사파리를 마치고 고구마 등 현지 음식으로 만찬을 즐긴 다음, 우리는 로비에 앉아 담소를 즐겼다. 밤이 이슥하자 방갈로형 객실에서 쉬었는데, 통나무에 값비싼 대치(아프리카 골풀) 지붕을 한 외관도 외관이었지만 실내는 특급호텔 수준이었다. 초원 속에 있어 들꽃들을 보며 맑은 들판의 바람을 마시며 행복한 아침을 맞았다. 같은 방을 쓴 지휘자 김일연 교수는 고요한 아침의 맑은 새소리에 큰 영감을 받는 듯 했다. 여느 곳에서 볼 수 있는 풍광이 아니었다. 여느 곳에서 맡을 수 있는 풀향내가 아니었다. 여느 곳에서 들을 수 있는 새소리가 아니었다. <찍찍 찌르르 찌르릭 찌르리르릭>..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태초의 소리 같았다. <너희들 잘 잤니?>하고 인사를 건네자 덤불 위에서 <찍찍> 인사를 한다. 에덴동산이 있다면 여기가 아닐까 싶도록 아름다운 아침이었다. 코끼리가 노는 능선 너머로 구부정한 기린의 목덜미가 지나간다. 찬송이 절로 나왔다. 기도가 절로 나왔다. 가도 가도 끝없는 능선과 아름다운 평원 속으로 생생하게 생명이 꿈틀대는 곳, 대초원의 끝없는 평화가 숨막히게 다가왔다. 바위 하나를 들치니, 제법 굵은 싹이 두엇 해쓱한 모습으로 고개를 든다. 나는 여기저기 피어난 들꽃들을 모아 사진을 찍고, 잊을 수 없는 이 곳에서의 추억을 한 편의 시로 남겼다.

  아프리카의 아침은
  기린의 목줄기를 넘어서 온다

  광활한 대지 대초원으로
  새벽이슬 살풋 내려앉으면
  순하디순한 코끼리 걸음으로 온다

  남십자성 온리온座 놀다간 풀밭으로
  아름다운 그대 걸음걸이로 온다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는 그리움으로
  노랗게 피어난
  아프리칸스 달개비 꽃으로 온다

  그 너의 노랫소리만 같은 음성
  맑은 새소리의 戀歌로 찾아 든다

  잠에서 깬 우리는 이슬 내린 잔디밭에서 기도회를 가졌다. <참 아름다와라><사랑하는 주님 앞에>...해가 뜨는 것과 동시에 시작된 경건회에서 김영애 선교사님 인도로 삼하 23장의 <다윗의 유언>을 묵상하였다. 보통 사람은 화해를 신청하고, 용서를 빌고, 후회와 아픔으로 죽어가지만, <나와 내집이 어찌 이와 같지 아니하랴>고 "웅장한 교향곡 같고 아름다운 오케스트라 같은 다윗의 유언" 앞에, 우리의 걸어온 길을 되돌아 보았다. 김병태 장로님의 간증 - 너는 왜 이곳에 왔느냐 - 이 있었다. <귀한 찬양으로 베드로의 3천 명이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기를..거리에서 방황하는 힘든 흑인들이 보이지 않더냐?>는 간증은 은혜로웠다. 잠이 깬 새들의 합창이 시작되고 우리는 <아침 해가 돋을 때>를 찬송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본 대평원과 끝없이 펼쳐지는 아프리카의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차안에서 장로님들의 성함으로 노정시를 지어보았다.

  차근차근 말씀하시는 정차근 장로님, 고백적 찬양만큼 인정도 많으셔
  정녕 영수님처럼 푸근한 정영수 장로님, 아버지 같고 맏형 같으신줄만 알았더니 성구암송의 달인이셔
  서예가이시고 한약의 대가이신 기도꾼 박종민 장로님, 手大福人 그 말처럼 늘 후덕하시길
  감동적인 하이테너의 사진가 주태진 장로님, 반짝이는 은발처럼 영화의 면류관 같은 삶이시기를
  정말 수더분하고 화창한 아침같은 정수화 장로님, 언제나 푸근한 인정을 보이시며 중책을 맡으시고
  才人처럼 재담이 무궁하신 배재인 단장님, 삶의 기초가 그 어진 성품에 있음이며
  지성으로 청종하고 화답하는 지청화 장로님, 언제나 명쾌하고 결단력 있는 거목으로 우뚝 서 계십소서
  상호 신뢰하고 피차 용납하라 외치시는 김상호 장로님, 희망봉 그 인도양 같이 잔잔하고 가멸차기를
  함박웃음 자애로우신 황문수 장로님, 고무신이 몇 문인가요. 하나 사 드리고 싶군요
  권세있으신 권오중 장로님,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 주위에 사랑을 꽃피워 五中福音 천상의 화원으로  
  백두대간 같은 인생길 종주해오신 김종주 장로님, 황금길 달리는 믿음의 경주자 되소서
  일등 못하면 성에 안 차는 유연한 감성의 소유자 김일연 교수님, 인생의 엇박자도 잘 지휘하소서
  규모있게 일하시는 이규하 장로님, 여름날의 얼음냉수나 나무그늘처럼 늘 시원스레 사시길
  언제나 松鶴 같으신 송학진 장로님, 그 너그러움에 홀딱 반하겠소
  이상적인 장로상을 보여주시는 이상훈 장로님,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든든합니다
  최고의 어레인지먼트 최진석 장로님, 진짜 보석 같으오
  감동적인 김동하 장로님, 휴대전화 문자 선물 정말 고마왔어요
  주 은혜 크도다 김은대 장로님, 할만 하시면 사돈합시다
  순교자 후예 배문호 장로님, 천국 상급 문호가 환히 열려 있군요
  매사에 앞장서시는 김병태 장로님, 세 사람 가족여행 정말 보기 좋군요
  광수생각 김광수 장로님, 언제 보아도 푸근한 고향이 떠오릅니다
  양순 준수하신 호남아 양준호 장로님, 남산동 생고등어 맛 영 못 있겠소
  한 반 되어 좋으시다던 김국호 장로님, 학교 일 잘 돌보고 계시죠
  반주자 기사까지 김기현 장로님, 그 긴 이십 년도 잠간이었지요
  변함없으신 변도우 장로님, 우리 모두 도우시는 은혜로 살아갑시다
  한성기린 한성권 장로님, 이번 사파리 기린 목 정말 멋졌습니다
  현명 성실하신 이점현 장로님, 이 점을 특히 칭찬해드리고 싶군요
  문에 걸려 낳았나요 이문걸 장로님, 내려놓고 사는 삶이 정녕 아름다움을 장로님을 통해 느꼈다오. 그 용기, 그 재치, 그 익살은 백만불짜리였소
  황금종 울리니 평화로다 김종화 장로 올립니다


  ▲ 포쳅스트룸대학이 있는 교육도시 스텔렌보쉬 공원의 감람나무 아래, 쌀밥에 가오리무침과 장조림, 생선전과 장국 등 한식 도시락을 먹고 휴식중

○ 스텔렌보쉬 연합교회에서의 찬양

  스텔렌보쉬에 다다르자 처음 올 때완 달리 불볕더위가 대단하여 아프리카의 맛을 제대로 보는 것 같았다. 부인들도 <장로님. 아프리카 안 덥다시더니 덥네요> 하고 하소연을 한다. 그래도 원주민들은 밭고랑에 줄지어 일하고, 수확한 포도를 수레에 수북히 싣고 어디론가 가는 모습이 그림 같다. 모두들 그늘을 찾아 쉬고 있는 동안 단원들은 냉방이 안된 교회당에서 연습을 했다. 교회당 곁에는 자그마한 식물원이 있었는데, 수천 년을 산다는 세퀘이어 나무와 아카시아 원종, 씨앗이 달팽이를 닮은 침엽수와 가시면류관을 만들었다는 가시나무 등을 렌즈에 담느라 분주하게 보냈다.
  연주회장인 스텔렌보쉬연합교회는 외관이 아름답고 파이프오르간이 있는 예배실이 십자가 형태로 설계돼 있어 공명이 잘 되며 좋은 목회자를 모신 은혜로운 교회였다. 이 교회에 다니는 백인들과 김형규 선교사님 교회의 흑인 교우들, 그리고 우리 황인종이 함께 모여 연주회를 갖게 되었다. 유나이티드처치 담임목사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잡고」란 말씀은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이 세대에 생명을 주는 말씀을 의지한다는 것을 뜻합니다..빌2:12-18의 어둠 속의 빛, 시119:5의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인 말씀, 벧전의 생명의 말씀이 여기 계시오매..말씀 의지하여 하늘의 빛나는 별들처럼 빛을 발합시다>...<하늘에 반짝이는 별>이란 멧시지(김영애 선교사 통역)가 끝나고...
  첫 순서로 흑백인으로 구성된 젊은이들의 찬양이 있었다. 아프리카 특유의 생기있고 빠른 박자에 맞춘 백인 소녀의 안무가 그림처럼 아름다왔다.
  다음으론, 어려운 가운데서도 승합차를 전세내어 먼 길을 달려온 선교사님 개척교회의 교우들이 제일 좋은 옷을 빼입고 나와 춤을 추며 찬양을 했다. 자리에서 나오면서 시작된 찬양과 율동, 전통 북소리가 귀를 얼얼하게 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이들은 예배 때 보통 서너 시간씩 찬양한다고 한다. 김형규 목사님이 제발 좀 짧게 하자고 해도 막무가내라는 것. 그나마 조금 짧아진 것이 세 시간이란다.
  우리 단의 Opening Hymn <만복의 근원 하나님>이 중이층과 앞강단에서 합창으로 울려나오자 장내는 찬양의 향기로 가득찼다. 준비한 남아공 국가 <..시케레라 디나 루 사포롸요..>를 합창하자 모두들 기립한다. 합창과 독창이 이어지고 앵콜송까지 부르자 장내는 온통 감동의 도가니였다. 특히 청중과 함께 영어로 부른 <예수 사랑하심은 Jesus loves me>은 세 인종의 화합의 장이 되기에 충분했다.
  공연이 끝나고서도 선물로 전달한 성찬기를 1등 상품인 줄 안 흑인 교우들의 자청 앵콜 공연이 이어졌고, 단원들은 뜰에 도열하여 교우들과 교제의 악수를 나누었다. 흑백의 교우들은 <그레이트풀! 원더풀!><행복한 밤이었다><꼭 다시 오라>..한 사람 한 사람 손을 잡고 당부를 하였다.


  ▲ 흑인 빈민촌의 사모라 마셀 개척교회. 현지인들이 <저 특이한 인종들이 무슨 일을 벌일까>하며 주시하고 있다고 한다

○ 흑인마을 개척교회 방문

  이래저래 밀리기만 한 빈민가 개척교회 방문이 떠나는 날 아침에야 이루어졌다. 여성도들이 제일 좋은 옷을 입고 나와 맞아주었다. 우리 일행은 공사중인 예배처소 건물(Christian Centre Samora Machell)에 서서 찬송을 부르고 눈물로 기도를 했다. 고신대 의료선교팀이 와서 진료한 후로 7명, 10명..이렇게 늘어난 흑인교회. 움베키 현 대통령 부인의 이름을 땄다고 했다. 맨발의 아이들이 철조망에 붙어서서 구경을 했다. 신축 중인 통나무 유치원 건물도 둘러보고 여행 주머니를 끌러 즉석 헌금도 하였다. 송학진 장로님은 장모님이 선교헌금으로 주신 3백불을 냈다. 누가 뭐래도 선교의 길은 험난하였다. 강도가 활개치는 빈민굴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선교사님들의 노고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동행한 ROTC 김주환 소위(김병태 장로 자제)는 개척교회 방문이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인상깊고 보람있는 일이었다고 한다. 아프리카를 떠나며 나는 또 한 편의 시 <아프리카 아프리카>를 썼다.

  이 세상 그 어드멘들 풀밭이야 없으랴만
  정녕 고향만 같은 本鄕 아프리카 그 초원에서
  이리뛰고 저리뛰며 들노루처럼 살고파라

  바람은 한없이 맑고 거침없이 블었었지
  세상 근심이란 근심 말끔히 씻어 주었지

  神의 식탁인가 책상인가
  천상의 화원 테이블마운틴
  그 정상에서 함께 맞은 석양과 보름달
  풀벌레 소리 함께 대합창으로 여울졌던
  우리들의 노랫소리
  함께 바라보았던 별
  산봉을 넘던 구름자락
  바위틈의 꽃들이
  그대로 에덴동산이었지

  대초원에 피던 꽃들은
  색채의 마술 바로 그것이었어

  이제 더 이상 詩는 설명이 아니라던
  老시인의 그 말이 아니라도
  아프리카 너는 한 편의 서사시로다

○ 다시 홍콩으로

  조벅 공항에서 짐을 부치고 쇼핑을 했다. 교우들 몫으로 아프리카 그림 포장 초컬릿 다섯 통과 젤리과자, 말린 과일모둠을 샀다. 아프리카 들꽃 공부를 위해 식물시리즈 우표 파켓과 엽서들도 샀다. 앙징맞은 기린이 매달린 열쇠고리 두 개도 샀다. 점원이 코리안이냐 묻고, 'Kim, Kim' 하며 친근감을 표시한다. 'Kim is Gold, Pure Gold!' 했더니, 'Oh, Gold?' 하며 반색을 한다. 이름도 때로는 꽤 쓰이는구나..김은대 장로 입술의 상처자국을 보고 화물담당 직원이 <복싱 선수냐?>고 묻자 <키쓰자국>이라 대답했더니 박장대소하며 쉽게 통관시켜 주더란다.
  홍콩으로 오는 비행기 안. 원색의 스카프를 두른 흑진주빛 승무원이 지나가고 내가 탄 비행기는 마다가스카르 그 길쑴한 섬 위를 지난다. 기내식으로 나온 닭고기 스파게티 비빔을 먹고 로이보스차를 시켜 마시다가 남아공 특산인 포도주를 얻고 詩를 쓰다가 책을 읽다가 영화를 보다가 담요를 뒤집어쓰고 모로 누워 잠을 청하다가 스트레칭 후에 잠간 걷기를 하다가...뒤칸에 있는 스튜어디스에게 가서 컵라면을 청하다가...구름 속을 비행하나보다 기체가 심하게 흔들리는 걸 보니...항로표지판엔 인도양 인도네시아 상공이더니 대만 근해를 돌아 마침내 홍콩에 기착한다. 열흘 전에 보던 그 가이드의 얼굴이 보였다. 짐을 찾자마자 두툼한 겨울옷을 꺼내 입고 스타의거리를 찾았다. 몇몇 대형상점에 들러 쇼핑도 했는데, 화장품, 액세서리, 보석 등 사치품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송학진 장로님과 시내 구경을 나서 아내에게 줄 꽃 브로우치 세트를 사고, 야시장 구경도 했다.  
  홍콩의 하루 전기값이 백만불이라는 <백만불야경>도 보러 갔다.(상해는 '천만불야경') 안개에 가린 야경은 가히 몽환적이면서도 아름다왔다.  


  ▲ 홍콩 스타의거리에서 송학진·신종례, 이상훈·한상림 교수 부부와 함께

○ 홍콩제일교회에서의 공연

  유명한 배우들의 집이 있는 구룡당(九龍塘 Kouroontung) 한인제일교회는 첨탑이나 십자가가 없어 버스가 두 번이나 같은 블럭을 돌았다. 홍콩의 12 한인교회 중 350명이 회집하는 제법 큰 교회였다. 오랫만에 먹는 한식이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다. 시차적응이 안 되어 힘들게 찬양을 했지만 교민들은 더없이 기뻐하였다. 특히 유명 연극인 윤석화 집사는 꽃꽂이로 장식을 하고 기다려주었으며 단원들과의 기념촬영에 흔쾌히 응해주었고, 단장의 요청에 즉석에서 특송(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까지 하여 기쁨을 더했다. 윤집사는

  <이토록 아름다운 노래로 은혜를 받게하심을 감사드려요. 남편 외는 너무나 멋있는 남성이 없어서 답답했는데..어떤 배우도 저를 마음 설레게 못하는데, 오늘 찬양하시는 모습을 보고 정말 멋진 남자라고 생각했어요. 내 남자도 저렇게 만들어야지 하고 도전을 받았습니다. 얼른 권사가 되어 권사성가단도 만들어야지 생각도 하고요..'나의 삶도 정말 축복받은 게 분명한 거야' 하면서 여러분의 숨결과 호흡을 느꼈습니다>

인사를 했고, 앵콜송으로 생일을 맞은 송학진 단원을 위해 <색시버전>으로 <해피버스데이>를 불렀으며, 단장도
  <레이디스 앤 젠틀맨(웃음)..굿 이브닝?..저희도 5대양 6대주를 다 누비며 다녔지만 우리 윤석화 집사님 못말리겠습니다. 귀한 갈비탕과 김치와 생강차까지 준비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나 값지고 은혜로운 여행이었습니다. 진짜 아프리카 땅이었습니다. 천국과 지옥과 마지막 미지의 대륙을 보고 왔습니다>
하고 인삿말을 하여 교제의 시간이 되었다. 담임목사의 제안으로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찬송을 교우들과 함께 부르고 <하나님께서 이분들을 사용하심을 감사드립니다>는 기도로 공연은 끝이 났다.


  ▲ 홍콩한인교회에서 <神의 아그네스> 윤석화 집사를 만났다. 찬양시간 계속 몸을 흔들며 노래를 즐기는 모습에 <요렇게 예쁘고 깜찍한 아줌만 첨봤다>고 하자 <'아줌마'도 미안하죠, 할머닌데..>하며 소녀처럼 활짝 웃었다

○ 외식천국 홍콩

  홍콩에 머무는 동안 세 번 외식을 했는데, 침사추이(尖沙咀) 초원(草苑)이란 한국요리 식당은 김치찌개가 매웠지만 라면사리를 오랜만에 먹을 수 있어 좋았다.
  또 한 번은 페닌슐라센터에 있는 탁신레스토랑(德興酒家)에서의 <딤섬点心>이었는데, 매콤한 육수의 쌀국수에다 여덟 가지 만두를 골고루 맛볼 수 있어 좋았다. 우리 증편 비슷한 만두도 있었는데, 새로운 메뉴가 나올 때마다 우롱차로 입안을 헹구고 먹으라 하였다. 중국인들이 기름진 음식을 먹고서도 살이 찌지 않는 것은 이 차 때문이니..그들의 지혜가 놀라왔다.
  마지막으로는 珍寶王國(Jumbo Kimgdom)이라는 유명한 식당에서의 전통음식이었는데, 호화로운 배를 타고 들어가 왕좌가 놓인 식당에서 귀족처럼 시중을 받으며 먹는 관광코스였다. 새우 등 코스별 요리도 맛있고 재미도 있었다.      


  ▲ 홍콩섬의 해변공원. 영화 <모정慕情>의 무대가 된 언덕

○ 심천의 소인국에서

  이튿날, 홍콩의 홍함(HungHom)역에서 전철 형태의 열차를 타고 40여 분을 달려 심천역에 닿았다. 홍콩과 중국은 일국이체제 원칙이어서, 출국신고와 입국심사를 거쳐야 했다. 본국 안내인을 써야 한다는 원칙 때문에 안내는 말이 빠르고 발랄하기가 이를데 없는 연변 조선족 아가씨가 맡았다.

  소인국엔 만리장성, 태산 등 중국의 명승과 유명 건물이 총망라돼 있었다. 경내가 엄청나게 넓어 코끼리열차를 타고 주마간산식 설명을 들으며 좌우로 눈돌리기에 바쁘다가 두어 군데 내려 사진도 찍고 쉬었다. 목련이 피고 있어 여기가 제비가 돌아간다는 강남인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소인국 옆에는 민속촌도 있었는데, 중국의 소수민족 가옥들이 실물 크기로 세워져 있고, 그들 민족 가운데서 뽑혀온 아가씨들이 특산물을 팔며 근무(?)하고 있었다. 우리 조선족 건물은 커다란 기와집에 지게와 옥수수, 멍석 등이 추녀에 걸려 있었다. 소수민족 가운데 유일하게 대학을 가지고 있다고 가이드가 자랑스레 말한다.
  소인국 관광이 끝날 무렵, <세상에 이런 일이>란 한국 TV 프로그램에도 소개된 적이 있다는 가위인간을 만났다. 엄지와 검지로 가위를 거꾸로 쥐고서 상대방의 실루엣을 찡그리며 바라보고선 <오우케이> 소리와 함께 30초만에 후딱 오려내어 5천원씩을 받았는데, 그 솜씨가 가히 입신의 경지였다.
  연변아가씨 말처럼 <비가 지글지글 오고 덜덜덜 몸이 떨려, 김이 몰몰 나는 밥이 그리운 날> 우리는 관광을 했다. 한국 드라마의 밥상차리는 주부를 본 중국 남성들이 <한국 와이프하고 하루만 살아봤으면!> 한다고 쉴새없이 쏟아놓는 해설에 입이 절로 벌어졌다.

○ 심천한인교회에서의 찬양

  <스트레스>를 고향에선 <정신타격>이라 한다는 연변출신의 가이드 金菊花 동무가 <너~무 멋있었습니다. 가이드가 막 격동됐습니다>는 찬양은 저녁에 이루어졌다. 상가에 둥지를 튼 한인교회는 중국 내지의 아이들과 자매결연을 하여 힘차게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교우들이 정성껏 마련한 한국음식(육개장과 잘익은 무김치, 나물과 무침)과 그동안의 휴식으로 많이 회복된 단원들은 한결 나아진 기량으로 찬양을 마칠 수 있었다. 교포들은 마음을 열고 찬양에 동참하였다. 이역만리 중국땅에서 열심히 일하고 신앙생활 잘 하라 격려하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연출을 맡은 지청화 장로의 부친상 소식에 단원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늦게 통보를 받는 바람에 장례식 참석이 안되어 부부가 밤마다 울었다는 고백을 듣고 함께 눈물을 흘렸다. 그나마 99세까지 팔팔하게 사시다 아들들의 인사를 받고 돌아가신 것이 큰 위로가 되었다. 가이드 김국화 양이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도 시간 되면 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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