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천한인교회에서의 찬양
<스트레스>를 고향에선 <정신타격>이라 한다는 연변출신의 가이드 金菊花 동무가 <너~무 멋있었습니다. 가이드가 막 격동됐습니다>는 찬양은 저녁에 이루어졌다. 상가에 둥지를 튼 한인교회는 중국 내지의 아이들과 자매결연을 하여 힘차게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교우들이 정성껏 마련한 한국음식(육개장과 잘익은 무김치, 나물과 무침)과 그동안의 휴식으로 많이 회복된 단원들은 한결 나아진 기량으로 찬양을 마칠 수 있었다. 교포들은 마음을 열고 찬양에 동참하였다. 이역만리 중국땅에서 열심히 일하고 신앙생활 잘 하라 격려하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연출을 맡은 지청화 장로의 부친상 소식에 단원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늦게 통보를 받는 바람에 장례식 참석이 안되어 부부가 밤마다 울었다는 고백을 듣고 함께 눈물을 흘렸다. 그나마 99세까지 팔팔하게 사시다 아들들의 인사를 받고 돌아가신 것이 큰 위로가 되었다. 가이드 김국화 양이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도 시간 되면 교회에 나가 볼까 합니다. 나 어릴 때 두만강 연변의 큰 교회에 온 한국분들이 손수건 볼펜 주면서 귀엽다고 했어요. 나 오늘 격동됐습네다.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하고 말하여 박수를 받았다. 지휘자가 인천을 거쳐 미국으로 먼저 떠나는 바람에 심천역까지 배웅하고 호텔로 돌아와 쉬었다. 호텔 앞에는 아기를 안고 구걸하는 <가짜걸인>이 있었다. 60년만의 추위에 속수무책인 중국땅. 수많은 귀성객들이 인해전술처럼 역광장에 모여 눈을 맞으며 밤을 새운다고 한다. 우리도 난방없는 방에서 담요 한 장 없이 시트 한 장으로 새우잠을 잤다. TV에선 탤런트 전원주씨가 나오는 한국드라마를 방영하고 있었다. 이튿날 아침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서야 몸이 풀렸다. <이제는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힘이 솟아나는 것 같았다. 이번 여행을 주선한 김광수 장로께서 <까치가 얼어죽었다>는 이야기를 꼭 써야 한다고 열을 올렸다. 나는 감흥에 겨워 <중국땅에서>란 시를 썼다.
山들이 덩실덩실 춤추고
물결이 일어나 찬양하네
풀들이 고개흔들며 노래하고
꽃들이 입벌려 찬양하네
겨울비가 내려 함께 노래하고
너울거리며 남국의 수목이 찬양하네
새들도 가슴을 열고 지저귀고
대양이 깊은 숨소리로 찬양하네
이 세상 무엇보다 더 아름다운
피조물 - 우리들의 찬양소리에
땅들도 반주로 노래하네
등소평의 개방정책으로 생겨난 6개의 경제특구 중의 하나인 심천. 벌써 서울 인구만한 대도시가 되어 고층빌딩이 즐비하고 경제활동이 활발하다. 가까운 홍콩까지 매일 출입국신고를 하면서까지 출퇴근하는 시민들이 부지기수다. 빠르게 발전해가는 거리엔 등소평의 대형초상화가 걸려 있다.
▲ 홍콩섬 해변공원에 있는 말하는 물고기像
○ 그리운 교회와 집으로 - 어려움이 많았던 여행, 그러나 보람있고 은혜로왔던 연주여행
홍콩으로 돌아온 우리는 짐을 부치고 마지막 쇼핑을 했다. 나는 홍콩의 市花가 그려진 우표와 선물(찻잔받침)을 샀다
홍콩 공항에서의 천만원 차아지(짐) 실랑이, 호텔 정전사태, 단원의 부친상, 해발 천 미터 산상 조난, 명예단장의 부상, 공항에서의 귀중품 도난, 일정 변경, 예상치 못했던 추위, 감기와 설사가 끊임없이 우릴 괴롭혔지만 우리 단원들은 미동도 않고 잘 견뎌 내었다. 연일 빼곡한 일정에 목이 쉬고 재채기가 나오는 가운데서도 찬양할 때만은 최선을 다하여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내는 단원들의 눈물겨운 모습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성권, 정수화 장로님의 멋진 곡중 솔로와 박창숙 교수의 명주실을 뽑는 듯한 아름다운 쏘프라노, 男聲합창의 중후한 음색은 청중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였다.
희망봉, 그 물빛을 닮을 수만 있다면..테이블마운틴의 그 붉던 낙조와 스텔렌보쉬 그 서늘하던 바람결과 뜨거운 한낮의 정열을 닮을 수만 있다면..인도양의 잔잔한 평화와 대서양의 거침없던 바닷바람, 그 굽이치던 파돗결을 닮을 수만 있다면..그리고 단원 가족들의 한결같은 마음씨를 닮을 수만 있다면 이번 연주여행은 최상임에 틀림없으리.
마지막으로 <케이프타운 식물원의 물망초에게>란 시로써 여행기를 끝내려 한다. 출국하며 깎은 손톱이 또 깎을만큼 길어난 걸 보니 긴 여행이었음을 실감하겠다.
그렇게 잊을 수가 없더냐
먼 이국땅 아프리카
풍광 좋은 테이블마운틴 언덕에 기대어 서서
아득한 희망봉을 바라보며
파릇한 그리움 다 못 삭이고 섰나니
그래 나 그댈 잊지 않으리
파돗결 드높은 대서양
잔잔한 호수만 같던 인도양
마다가스카르 그 신비의 섬을 지나
내 조국 코리아로 가더라도
▲ 아프리카 커스텐보쉬 식물원에 핀 물망초. <지금 이 순간이 내 생에 가장 젊고 건강하고 행복한 순간이라 생각하라>는 김영애 선교사의 음성이 들리는 듯 하다
* 반성회 - 2008. 2. 11 저녁 6시반. 부산YMCA 뒤 낙지마당에서 반성회가 열려 결산보고, 사진교환과 함께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모두들 단장님과 임원들의 수고에 감사를 표했다. 단장은 신입 단원들과 젊은 장로님들이 힘을 내어 봉사해 주어서 고맙다는 인삿말을 하였다. 흑인교회를 위해 성가단에서 헌금한 3백불과 송학진 장로 장모님의 3백불, 당일 헌금 등으로 교회당 화장실 공사를 시작했다는 소식도 전하였다. 신병 치료차 부산에 오셔서 동석하게 된 김형규 선교사님은 식기도를 통해 <무엇보다 찬송 가운데 즐거워지고 깨끗해지고 풍성해질 수 있도록..이스라엘의 찬송 가운데 계시는 주님께 기도>하였고, <감명 깊은 날들이었다. 테이블마운틴의 케이블카는 그 도시의 자랑이었는데 고장이 나고..자정을 함께 보내고..위기에 대처하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 계획한 공연 외의 찬송(야외 찬양과 식사 찬송)도 감동적이었는데, 오히려 그때에 선교의 코드가 많았다. 다음엔 현지어 찬송 등의 레퍼토리를 더 준비했으면 좋겠다>고 회상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