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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부산장로성가단 일본연주여행기 조회수 : 1948
  작성자 : 김종화 작성일 : 2016-09-17

5/24 (화) 비/장성단日本연주여행(3시,국제여객터미널,코스타빅토리아크루즈,~27,사세보&나가사키)

   새벽부터 실비가 오락가락하더니 오후가 되자 빗줄기가 굵어져 택시를 불러 타고 국제여객선 터미널로 갔다. 옷가방(단복) 캐리어 서류가방에다 카메라까지 울러멘지라 짐이 많다. 대합실에 도착하자 일찍 나온 단원들이 정장에 여행모를 쓴 내 모습에 한 마디씩 한다. 승선순서를 기다려 검색대를 지나자 거대한 흰색의 크루즈 선체가 시선을 압도한다. 승선 후 호텔같은 객실의 둥근 창을 통해 출렁이는 바다가 보였다. 연회장 원탁에서 만찬을 즐기다 오랜 벗인 한국CE동지회장 이우희 장로를 만났다. CBS장로합창단 수석부단장으로 창단기념음악회를 위해 승선했단다. 세계CE 부총재 고동운 장로 역시 단원이란다. 필리핀 일로일로 선교여행에 동행한 대구 운암교회 김달연 장로도 반갑게 해후하였다. 곧 목사 안수를 받아 선교지로 떠날 예정이란다. 식사 후에 룸메이트 정차근 장로님께서 장성단 30년의 애환을 차근차근 말씀하셨다. 나중엔 신앙여정까지 더해져 부흥회처럼 이어져 밤늦게야 눈을 붙였다. 

만찬장에 들어서면서

5/25 (수) 흐림/水菊의 계절/처자이별바위 몸무덤 머리무덤殉敎地탐방/CBS장로합창단公演

  새벽에 잠이 깨어 상갑판 앞에서 일출을 맞으며 수술을 앞둔 김상호 장로님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였다. 평택에서 오신 김현웅 목사께서 초면임에도 함께 기도해 주셨다. 수술을  구경을 했다. 박무 너머 나가사키 항이 저만치 보였다. 부산항대교와 꼭 닮은 다리가 나타났다. 우리가 하선하자 트럼본과 클라리넷, 북과 전통악기를 든 남녀가 화복 차림으로 환영연주를 해주었다. 시가지는 첨탑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노면전차(트램)가 다니고 수국과 여러 꽃들이 만발한 거리는 깨끗하였다.

우리가 타고 간 크루즈 코스타 빅토리아 호 

   아침을 먹고 순교지 탐방을 나섰다. 내가 탄 1호차엔 단장과 부단장, 인솔자 김재원 교수와 지휘자까지 모두 탔다. 운전기사는 68세의 스기다니(杉谷) 씨였는데, 어찌나 친절하고 쾌활한지 이내 친구처럼 '스기다니상' '키무상' 하며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됐다. 산딸나무 가로수가 보여 <십자가 재료였다는 산딸나무 이야기>를 들려주자 박수가 쏟아졌다. 십자가 재목이 된 산딸나무가 슬퍼하자 예수께서 키를 낮추어 다시는 재목이 못 되게 하시고, 꽃을 십자화로 열매를 면류관 모양으로 맺게 해 주셨다는 전설의 나무다. 일본에 온 개신교 선교사가 가져다 심어 교회당 뜰엔 으레 이 산딸나무를 심는다. 길가에 핀 삼색제비꽃의 전설과 '사랑의 열매' 모델로 쓰인 '먼나무' 이야기를 하며 언덕길을 걷다가 "도대체 여기 웬일이냐?"는 당진동일교회 이수훈 목사를 만나 포옹을 하였다. 그러고보니 한 배에 탄 지인이 많다.

26인 순교비 앞에서 우리는 기도를 드렸다

스즈타로 감옥터

목이 잘려 처형되거나 화형 당하기도 했고

10세 11세 형제가 75세까지 복역하다 숨을 거둔 곳이다

 

처자이별바위

뙤약볕에 전국을 끌려다닌 순교자들은 이 바위에서 마지막 물과 차를 마시며 처자와 이별을 하였다

처형장에서

   맨 처음 간 곳은 시내 중심가의 26인순교지(1597)였다. 2,500리를 땡볕에 끌고 다니다 처형했단다. 그중엔 12~14세 소년도 있었는데, 개종만 하면 살려주겠다는 말에 "잠시 인생을 위해 영원한 영혼을 팔지 않겠다"며 끝까지 믿음을 지키다 순교했다 한다. 시원한 바닷가를 달려 순교자들의 감옥터에 닿았다. 유적지에 핀 붉은달맞이꽃을 보았다. 이 슬픔의 동산에도 보통의 두 배는 됨직한 초롱꽃과 도랑가 파스텔빛 꽃창포가 아름답게 피었다.

순교지에 핀 초롱꽃에 대해 설명하는 필자

   처자이별바위는 눈물로 처자(妻子)를 이별하였기에 "이끼가 끼지 않는다" 하여 손으로 만져보는 권사님들도 있었다. 부활할까봐 머리와 몸통을 따로 묻었다는 머리무덤 뒤엔 맹종죽순이 자라고 있었다. 땡볕 아래 처형장에 꿇어앉아 통곡기도를 하는 교우들의 모습도 보였다. 일본열도를 땡볕 아래 맨발로 걷게 했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12세 소년이 "일시적 안일보다 영원한 행복을 얻겠다"고 하며 순교의 길을 꿋꿋이 갔다고 한다. 바라보는 이들은 그들의 용기와 신심에 경의를 표했다 한다.

순례 도중에 체육관에서 먹은 도시락 메뉴판

   순교유적순례를 마치고 돌아와 항내에서 기념품(토끼주전자)을 사고 뒤늦게 검색대로 들어서자 신수태 장로(부부)가 선내카드를 분실해 진땀을 빼고 있다. 빨리 들어가서 가이드를 보내달랜다. 그럴 게 아니라 일단 검색대로 가자 하여 사정을 말하니 호실번호와 이름 생년월일을 확인한 후 휴대전화 엡으로 확인 후 바로 들여보내 주었다. 이후 이들은 검색대를 지날 때마다 재차 검색하였다. 혹시나 다른 사람이 카드를 줏어들고 들어오나 싶어서일 게다.  

CBS장로합창단의 창단공연을 관람하였다

   창단 3개월의 CBS장로합창단 공연을 우리 일행 모두가 관람하였다. 칸소네 2중창과 복4중창을 곁들인 합창이 꽤나 신선하였다. 이우희 장로의 클라리넷 독주엔 부인 김혜경 권사가 반주를 맡았다. 마지막 앵콜 시간에 부산장로성가단과 함께 <I Love You Lord>를 합창하여 우레같은 박수를 받았다.

   창단음악회 후에 우리 성가단의 리허설이 있었는데, 경청하던 가이드가 남성(男聲)의 중저음 화음에 팔등에 소름이 돋았다며 "엔돌핀보다 건강에 더 좋은 도파민이 나오는 격한 감동"이었다고 하였다.     

5/26 (목) 맑음/여기도 초롱꽃이 한창이네/자비에르記念교회探訪/성화여고公演/환송식/선상공연

   밤새 천천히 달려 이튿날 아침 다음 기항지에 닿는 유람선인지라 눈을 뜨자 사세보 항구가 천천히 다가왔다. 군항답게 최신예 군함들이 도열해 있다. 조식을 먹고 다리 건너 히라도섬(平戶島) 프란시스 자비에르 기념교회를 찾았다. 기념교회 가는 길은 삼나무와 신록으로 가득한 숲속길이었다. 1549년 복음을 들고 일본을 찾은 최초의 선교사 기념 매점에 들러 갈피꽂이와 돋보기를 샀더니 직원 할배 세례명이 요셉이라 하였다. 교회당 안에는 고사리와 들꽃을 말린 압화를 팔았다. 헌금하는 이들에 대한 답례품이었다. 예쁜 엽서와 갈피꽂이를 고르고 헌금함에 천엔을 넣었다. 박해가 심해지자 불상 뒤에 십자가를 숨기고 기도했다는 애잔한 역사가 서린 곳이다.

   당시 로마교회 내의 진보세력이었던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이 한창이던 16세기, 익나티우스 로욜라를 비롯한 진보적인 예수회 신부들이 반동종교개혁을 일으켜 선교사를 세계에 파송하기 시작하였다. 개신교가 자리잡기 이전이어서 신부가 일본땅에 먼저 들어왔던 것이다. 신자들이 급속히 많아졌고, 순교자들은 1597년 2월 5일 풍신수길의 금교령에 의해 처형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선봉장으로 온 고니시(小西行長) 역시 천주교인(세례명 : 아우구스티누스)으로 십자가 깃발을 달고 와서 조선을 짓밟은 다음, 금교령을 어겨 처형되었다.

고딕식 첩탑이 인상적인 자비에르 기념교회 앞에서

단원들 사진 촬영에 분주한 부단장님을 찍어드렸다

   돌아오는 길에 가이드가 <도망갈 데 없는 섬이다 보니 화(和)의 전통이 있어 '자기 안의 和'로 마니아보다 심한 '오타쿠'가 생기고, 부부가 딴 이불을 쓰고, '오봉'에 따로 담아 '내 꺼 내 먹고 니꺼 니 먹는'> 일본문화를 설명하였다. 하도 시간을 잘 지키니까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분들이에요" 하고 단원들을 치켜세우기도 하였다. 신입단원 서의현 장로가 '3자 체조'를 가르쳐 주어 즐겁게 따라 하였다. 참자 덮자 털자가 그것인데, '참자 참자 참자 참자' 하면서 손등을 손바닥으로 치고, 덮자 덮자 하며 손뼉을 빗겨 치고, 털자 하며 손을 털어 웃음을 주었다. 

   우리가 공연할 세이와(聖和)여고는 사세보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산 중턱에 있었다. 새하얀 교사(校舍)와 순결의 상징인 흰 비둘기가 새겨진 교표가 무척이나 예뻤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옴니부스 글로리파이 데우스)'란 교훈도 퍽이나 인상적이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아담한 강당엔 오후 수업 2시간을 할애한 1,2,3학년 300명 전원이 질서정연하니 입장하여 우리 합창을 경청하였다.

 

기념축시낭송(초역 : 김종무 장로)

내가 한 행을 한글로 읽으면 윤나 양이 일본말로 한 소절을 읽었다 

手のひらに書いた詞 (金鍾和/キムジョンファ) - 美しかったと書こうか / 幸せだったと書こうか / この身ひとつ世に授かって / 楽しかったと書こうか / 手のひらに上に書かれた半生に / じっと書き留めたい一文を / みんなありがとうと書こうか / 今日喜びを分かち合い / 両国の愛と協力に / 天国を感じる.  

       손바닥에 쓴 시

           김종화

           아름

            다왔다고 쓸까

             행복했다고 할까

             이 한 몸 이 세상에

              와서 즐거웠다고 쓸까

              손바닥 위에 놓인 반생 위에

              가만히 쓰고픈 글 한 줄

              모두 고마웠다고 쓸까봐

              오늘도 기쁨을 함께 나누며

               양국의 사랑과 협력에

                 천국을 느껴본다 

   <일본교회가 부흥치 못한 이유는 기층민보다 귀족선교를 했기 때문>이란 단장 인사가 끝나고 나의 축시낭송 순서. 3학년 윤나 베노(上野 優奈) 양과의 교송을 미리 연습해 두었다. 윤나 양은 오뚝한 코에 생글생글 잘 웃고 눈매가 서글서글한 조선의 누이 같은 소녀였다. 일본 번역문에 번호를 매겨가며 낭랑하게 낭송하여 박수갈채를 받았다. 낭송을 마치고 '쌩큐 풔 유어 핼프!' 하며 악수를 청하자 3백명의 여고생이 환호성을 질렀다. 우리 합창은 대성공이었다. '앙꼬르 앙꼬루'를 연발하여 일본어로 된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와 <여름의 추억(夏思い出;나츠노 오모이데)>을 "기리스도니와 가에라레 마셍", "나츠아 구레바 오모이다스" 하고 불렀다. 눈을 깜박이며 듣던 교직원과 학생들이 정말 좋아하였다. 

우리 성가단의 연주모습(한글과 일문으로 된 가사 자막이 우편에 보인다)

   학생회장이 시종 한국어로 인삿말을 하여 깜짝 놀랐다. 성적이 좋아 일본의 주요 5개 대학(아이비리그) 입학성적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학교였다. 학생들이 휴대전화를 갖고 있지 않고, 있어도 집에다 두고 등교한댄다. '침묵청소'란 계단의 경구도 인상깊었다. "사랑해요!" 하며 두 팔을 올려 애교를 부려 열도의 한류열풍을 실감하였다. 경쾌한 율동과 함께 답가를 합창한 여고생들과 기념촬영을 하였다. 나는 윤나 양을 데려와 함께 사진을 찍고, 가져간 시집과 CD를 선물하였는데, 얼마나 좋아하는지 여고생의 때묻지 않은 웃음을 볼 수 있었다.

세이와 여고 합창단의 화답 공연

   아침에 출발하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은 양복 바지를 입은 게 큰 덕이 됐다. 장동익 장로가 선실에 연주복 바지를 두고 오는 바람에 검은 바지가 큰 역할을 한 것이다. 다행히 키도 비슷하여 바지가 꼭 맞았다. 이 일로 부인 오세련 권사와 단원들이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장 장로는 몇 번이나 거듭 고마와하였다. 우리 단에서 준비한 CD와 한글 성구 액자를 선물하자 교감(敎頭;고또센세이)이 일본 다기세트로 답례하였다.  

공연을 마치고 합창단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였다

   공연을 마친 후 점심(김밥)이 먹히질 않아 미리 준비한 피자 두 쪽을 먹고(사실 오늘 점심은 나가사키짬뽕을 먹기로 했는데 공연시간이 임박하여 김밥으로 대치되었다) 사포나리아 화분이 인상적인 교정을 떠났다. 선상파티의 날, 단원들은 흰 단복에 검정 보타이 차림이었고, 나는 밝은색 양복에 황금빛 나비 배지를 달고, 붉은색 바탕에 검은 줄무늬 속 월계관이 새겨진 보타이 차림으로 입장하였다. 하늘거리는 드레스를 멋지게 차려입은 부인들이 한결 우아해 보였다. 셰프가 초청하는 만찬엔 허브가 들어간 요리들과 랍스터가 나왔다. 부재료 요리와 샐러드와 김치도 푸짐하였다.

세이와여고 합창단의 환송공연

   식사 중에 "부산장로성가단과 자매결연한 세이와여고 합창단이 환송가를 부르고 있습니다. 승객들은 갑판으로 나와 주십시오" 방송과 함께 입추의 여지없이 11층과 6층 갑판에 모인 단원들과 승객들이 환호를 올렸다. 여학생들은 우리가 나타나자 팔짝팔짝 뛰며 좋아하였다. 이어서 한국어로 <보리밭>을 부른다. 우리도 함께 불렀다. 일본 노래를 부르더니 우리가 <아리랑> <어메이징 그레이스> <올드랭사인>을 부르자 이번엔 <할렐루야>를 합창하기 시작하였다. 통통한 체구의 교사가 지휘를 맡고, 김일연 교수와 동문인 동경 무사시노 음악원 출신의 지도교사가 반주를 맡았다. 헨델의 '할렐루야'를 부를 줄은 아무도 몰랐다. 뱃고동을 울리며 배가 떠나자 감동을 받은 부두 직원이 휀스 일부를 열었고 학생들이 배 가까이로 뛰쳐나왔다. 승객들은 감격에 겨워 눈물바다를 이루었고, 함께 '할렐루야'를 열창하였다. 무릇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영들이 형언할 수 없는 감동과 감격에 사로잡혔다. 2천명의 대합창단이 선상과 부두에서 주고받은 화답송은 자체가 예배였고 기도였고 향기로운 제물이었다. 정차근 장로님은 '장성단 30년 역사에 가장 감격스러운 순간'이라 하셨다. 

   한국을 향해 항해 중인 유람선 안에서 펼쳐진 선상공연은 원형계단을 이용해 입체적인 대열로 이루어졌다. 한 곡 한 곡, 가사 하나 하나에 최선을 다 했다. CBS장로합창단원 부부가 모두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주었다. 앵콜곡은 어제의 앵콜곡을 CBS장로합창단 지휘자(박성덕 음악목사)의 지휘로 불렀다. 70명의 화음이 선상에 울려퍼지자 모두들 환호하였다. 나는 동갑의 고창준 장로가 선실 기둥에 가려 지휘자가 잘 안 보인다 하여 자리를 바꿔 주는 바람에 지휘하는 팔만 보고 노래하였다. 맨 앞자리에 앉아 신중히 경청하던 김선도 감독의 기도로 공연을 마쳤다.

선상공연을 마치고

   하루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김홍석 정차근 배재인 김재원 단원과 11층 상설뷔페에서 피자를 먹으며 기쁨을 나누었다. 갈증이 나서 제빙기의 얼음을 두 컵이나 먹었다. 하도 피곤하여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5/27 (금) 맑음/연주여행 마치는 날

  샤워 후 새벽기도 시간, 11층 갑판에서 김선도 老목사님 설교를 듣고 나오다 울산교회 정근두 목사님과 평택의 김현웅 목사님 내외분를 만나 요거트와 과일로 아침식사를 하며 한 시간동안 장성단 이야기, 로이드 존스 이야기, 들꽃 이야기, 역사관 이야기 등을 나누었다. 정 목사님은 류영기 선교사가 출석하는 산내면에 교회를 개척한 이야기를 하였다.

   정차근 장로님은 단장님을 만나 역사정리와 단의 미래를 위해 결사대를 조직하고, 단의 통합과 소통, 질적 향상을 위해 힘써 달라 부탁을 하셨다. 30년을 근속한 정 장로님은 이번 연주여행으로 우리 단을 떠나신다. 정기연주회 때 부인과 명예단원까지 포함해 한 스테이지 공연하자고 제의하였다. 全日本합창대회에 출전하는 세이와여고 합창단을 정기연주회에 초청하여 협연키로 의견을 모으기도 했다. 헨델의 '할렐루야'를 비롯, 여고생의 율동 섞인 합창은 뭇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리라.

연주여행 중 교제를 나눈 김현웅 목사님 내외분과 정근두 목사님

   짐 챙기고 카드 확인하고 체크아웃하는 동안 배는 어느덧 안개 자옥한 오륙도를 들어섰다. 별다른 입국절차 없이 세관까지 일사천리로 통과하여 김정수 교수 기도 후 해산, 공교롭게도 혜광교회 老집사님이 운전하는 택시를 잡아 타고 신수태 장로 부부와 함께 초애원으로 왔다. 신 장로님 내외분은 역사관의 사료와 책과 꽃들을 보고 나물을 한 봉지 뜯어 갔다. 부인(이경옥 권사)은 약사(藥師)로 물 주는 게 그렇게 하고 싶었다며 호스로 하늘정원에 물을 뿌린다. 약초에 관심이 많아 여러 가지 허브와 약초를 찬찬히 구경하고, 막 피어난 애기홍장미와 흰참달맞이와 홍석죽 끈끈이대나물 붉은초롱 물망초 산수국 등 어우러진 화원에 감탄연발이다. 행운초가 벌레 같다며 이름을 묻곤 신기해 하였다. 초롱꽃과 행운초를 선물하고, 부부를 남천동까지 자택까지 모시고 귀가하니, T2 휴무단원 석운영 장로가 자신의 농장이 있는 생림으로 레일바이크 타러 오라고 야단이다. 

   여행가방을 정리하고 쉴참에 잠이 쏟아진다. 단원 가족 모두에게 넉넉한 성품을 주셔서 아무런 변고 없이 안전하게, 만날 사람 다 만나고 여행 목적 다 이루고 돌아와 한결 뿌듯하다. 기념품으로 사거나 받은 크루즈船모형 애기토끼주전자 자비에르기념교회 돋보기, 압화갈피꽂이, 베네치아 가면, 마그네틱이 다 예쁘다. 수고한 김재원 장로님과 임원들께 감사드린다. <김종화 남촌문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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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2

김재도2016.09.23 13:14
존경하는 김장로님, 멋진 글 감사합니다.
여행 첫날은 우리의 계획대로 되지않아 불만이 많았지만,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부산장로성가단을 사랑하셔서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아버지의 연출하심을 친히 보여주셔서 은혜롭고 감명깊은 해외연주임을 실감하였습니다.
박봉석2016.10.04 19:41
세이와여고 합창단의 환송공연, 나라와 나라사이의 이질감이 전송이란 행동이 따스함으로 다가와, 얼었던 마음이 눈 녹듯이 사라져 버렸다. 전송이란 ... 참으로 가슴이 찌릿했다.
​특히, 합창단이 우리말로 ‘보리밭’을 부를 땐, 더 더욱 우리와 일본이 가까워짐을 실감했을 뿐만 아니라, 헨델의 ‘할렐루야'를 4부로 제창할 땐 ......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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